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싶은 날, 나는 아이들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에게 뽀뽀하러 다가가선 심장 가까이에 한쪽 귀를 가져다 댄다. 두근두근. 약간 빠른 템포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어 넘어가고 나는 더 가까이 바짝 귀를 대 심장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바로 앞에 사랑하는 아이들이 쿵쿵 뛰는 심장을 가지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큰 안정을 얻는다. 나의 안정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서 온다.
우울한 채로 종일 온 집안을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운 일이다. 학기 중에는 등교를 시킨다고 아침 일찍부터 밥을 하고 먹이는 일, 방학에는 오전과 오후 내내 쉴 새 없이 내 귀에서 쫑알거리는 아이들. 집안일부터 육아까지 나의 온 힘을 쏟고 난 뒤엔 방전이다. 우울 속에 있는 나는 쓰러질 때가 많다.
육아를 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아기땐 말할 사람이 없어서, 조금 큰 후엔 어린이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이다. 홀로 외딴섬에 떨어져 있는 기분. 나는 그런 기분을 십 년째 느끼고 있다. 분명 아이들에게서 안정이 오는데 이 집 안에서는 안정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육아를 하면서는 행복하지만 때로 불행하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아이들에게 짜증 내지 말라던 의사의 말을 고이 새겨 힘든 마음을 꾹꾹 누른다. 외로운 마음을 누르고. 우울한 마음을 누루고. 나는 힘을 내야만 하는 아이들의 엄마니까.
이번 방학 오전엔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양손에 아이 둘의 손 하나씩. 아이들은 신이 나 나를 보고 웃는다. 내가 내어 준 건 손뿐인데. 나도 아이들을 따라 웃어본다.
아이들의 심장에서 들리는 두근거림과 작고 귀여운 손의 온기. 그런 따뜻함은 나에게 안정을 준다. 내가 안정을 얻는 방법은 역시 아이들 뿐이다. 아, 언제나 나를 귀엽다고 해주는 남편도.
우울증으로 두 배, 세배 힘이 들고 지쳐도 나는 엄마니까. 힘을 내야 한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