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 밥 걱정, 아이의 학원 숙제 걱정, 애들만 보다가 내 시간은 있을까 하는 걱정들. 이런 작은 걱정들을 시작으로 인생에 대한 중대한 고민까지 흘러가게 된다.
나의 걱정들은 사실 높은 불안 때문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성격을 가진 나로서는 무엇하나 예측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해 불안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막연한 미래가 불안하다 다시 당장 작은 사건 하나하나의 불안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의 높아져가는 대화 목소리에 또 싸우는 건 아닌지, 힘없는 아이의 젓가락질에도 어디 아픈 건 아닌가, 또 공부를 다 끝마치지 않고 쉬고만 있는 아이를 보면서도 걱정과 불안이 동시에 피어오른다.
걱정과 불안은 환상의 짝꿍이다. 걱정은 항상 불안의 손을 잡고 와 머리를 뒤흔들어 놓곤 한다. 불안이 결코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쫓는다고 순순히 나가주지 않는다. 이런 지독한 불안은 유전이 되는지 나의 아들에게서도 불안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학원 수업 시작시간보다 30분은 먼저 가야 안심이 된다거나, 자신의 생각을 오해할까 봐 불안이 앞서 짜증부터 튀어나오기도 한다. 시시때때로 보이는 아들의 불안함이 아들 자신을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지 불안 경험자로서 잘 알고 있다. 불안은 자아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녀석이니까.
아들에게 괜찮다 말하며 나에게도 한번 괜찮다고 몰래 말해본다. 그리고 천천히 높은 불안도를 낮춰본다. 차근차근 하나씩 해야 할 일을 끝마쳐가면 당장 급한 불안은 낮출 수 있다. 결국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는 불안이다. 그래도 다시 고개를 드는 불안이라면 어쩔 수 없는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의사에게도 불안도가 높은 나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의사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컴퓨터에 무언가를 타닥거린다. 불안은 그렇게 아 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멀리서 또 가까이서 불어오는 불안을 맞이한다. 불안은 커다란 인생이라는 나무에 부는 아주 약간 차가운 바람일 뿐. 조금 흔들려도 깊게 뿌리내린 인생이 뽑히진 않겠지. 괜찮다. 자꾸만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려도 괜찮다. 불안은 나와 함께 공존하며 아 하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