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중 대부분은 무기력하고 누워있고 또 자책한다. 그러나 매일같이 우울한 건 아니다. 하루이틀 정도는 기분이 좋아 짜증도 나지 않고 화도 내지 않는다. 물론 누워있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이 오면 오늘은 다행이라는 안도와 함께 불안도 온다. 또 조증이 오는 건가 하고.
조증이 오면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무섭다. 에너지가 샘솟는 나를, 돈을 터무니없이 쓰는 나를, 주변에 투머치토커가 되는 나를. 그런 나를 나는 무서워한다.
의사에게 다시 조증이 올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불안하다고 했다. 나 좀 어떻게 해달라는 말이다. 나의 불안을 좀 가라앉혀 달라는 말이다. 의사는 평소에도 불안이 많으시냐고 물었다. 나는 원래 불안함이 많고 예민한 성격이라고 했다. 의사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아 하고 컴퓨터에 입력하는 듯 보였다. 이 의사는 그렇다. 나에게 약 말고는 어떠한 처방도 내리지 않는다. 의사의 아 하는 소리는 불안에서 조금 벗어나게 한다. 내 불안도 별다른 문제 될게 아니라는 듯 말하는 의사가 고맙기도 하다.
아이들의 방학이었다. 방학엔 아이들과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돌아서면 밥 주고 돌아서면 밥 주는 일명 돌밥돌밥의 시간들. 아이들이 학기 중일 때보다 더 몸을 움직이고 힘이 드는 시간이지만 왜인지 나는 기분이 더 좋다. 우울할 틈이 없다고나 할까. 나에게 누워있을 시간도 주지 않는 방학. 그 조금의 틈이 없어 나는 조금 덜 우울한 걸까. 아니면 우울을 마음속에 더 저장하고 있는 걸까.
작년에 조증은 우울할 틈도 없던 방학이 끝나는 시점에 찾아왔다. 방학이 끝난 지금, 우울을 저장하고 저장하다 조증으로 터져 나올까 봐 불안하다. 불안한 나의 마음은 약을 먹으면 조금 나아진다. 약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말도 잊고서.
우울이 아니면 조증 둘 중 하나인 걸까. 마치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한 발만 움직여도 훅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로 떨어지는 뾰족한 산봉우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듯하다.
기분이 좋으면 나는 불안하고 무섭다. 내 발 하나가 조증으로 뻗는 것 같아 두렵다. 나는 뾰족한 어딘가 끝에 위태롭게 서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