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니기 전엔 나의 무기력함이 체력 문제인가 싶어 걷기 운동을 했던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운동복을 사고 새로운 마음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나는 작심삼일. 딱 3일 했다. 40분 정도 걷고 집에 온 후에도 똑같이 오전 내내 우울에 빠져 쓰러져 있었다. 걷지 않았을 때보다 더 오래.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무기력함과 우울감은 체력문제가 아니다. 나의 우울은 운동으로 고칠 수가 없었다.
작년에 갔던 병원의 의사는 항상 산책을 강조했다. 하루 한 번밖에 나가 햇빛을 쐬고 걸어보라고. 그 당시 걸을 힘도 없던 나에게 해주는 처방을 나는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병원의 의사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산책을 하라는 말도, 걸어보라는 말도, 친구들을 만나보라는 말도. 나에게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약을 처방해 줄 뿐이다. 의사의 이런 처방은 나를 편하게 한다. 안도하게 한다.
꼭 걷지 않아도 괜찮아지고 있나 싶다. 일주일에 대부분이 우울한 날들이었지만 지금은 반. 딱 반정도 우울하다고 느낀다. 의사가 처방해 주는 약을 꼬박꼬박 먹고, 아이들의 요구사항에 맞춰 몸을 움직여주면 그럭저럭 살아진다. 체력을 기르지 않아도 나는 내 활동반경 안에서 최대한 움직여주고 있다. 낮은 체력에 헉헉 대면서도 생활이 이어지는 걸 보면 나름 내 기준으로 괜찮은 체력인가 보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 올해 여름 체감온도는 4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깨에 맨 가방엔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대여섯 권 들어있고 한 손엔 양산을 든다. 내 몸이 자꾸 땅 쪽으로 기우는 건 무거운 책들 때문이다 생각하며 걷는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이 정도가 내 활동반경이다. 더 이상은 무리. 이것만으로도 나에겐 최대치 생활이다.
부담 주지 않는 의사와 약. 그거면 나의 체력은 족하다. 일상생활로도 벅찬 나의 체력.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 말고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만으로 기분이 꽤 좋아진다. 우울한 나는, 체력마저 부족한 나는 이렇게도 살아지니 다행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