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끝에 결국 친구에게 털어놓기로 했다.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주변과 나눠보라는 의사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친구 하나, 괜찮다고 너무 괜찮아 보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한테 다 말하고 풀라며 위로해 주었다. 친구 둘, 이제부터 자기한테 다 말하라면서 나의 등을 쓸어주었다. 슬픔은 나누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손을 내밀어주고 나를 붙잡아주던 그 순간만큼은 슬픔의 반이 날아가 살아져 버렸다.
의사 앞에서 그렇게 울던 나는 친구들 앞에서 울지 않았다. 이렇게 중요한 얘기를 하면서, 나의 깊은 속마음을 말하면서 울지 않았다. 의사 앞에서는 눈물을 쏟고, 흘리고, 닦기 바빴지만 친구 앞에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나의 감정을 들키기 싫어서였을까. 내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였을까.
너무나 차분한 나의 모습이 이상하게 비치진 않았나 괜히 걱정을 하면서도 속은 굉장히 후련했다. 모자 장인이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을 때 이런 속 시원함이었을 것이다.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비밀을 확성기에 대고 소리친 기분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위로를 얻었다는 좋은 결과까지. 모처럼 울지도 않고 속 편했던 일이다.
사실 사람들을 만나면 내 모습은 180도 달라진다. 누가 봐도 활달하고 사교성 좋은 사람, 유쾌한 사람으로. 전혀 우울해 보이지 않는다고도 하고, 완전 외향적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나는 집순이에 백 퍼센트 내향적인 사람인데.
나는 우울을 더 감춘다. 밝게 웃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한다. 내 눈물을 감추고 우울을 감추는 데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흘리던 눈물이 멈추고 밖으로 나가서는 밝은 목소리로 말하게 되는 내가 참 이상하기도 하다.
밖에선 울지 않는다. 아 병원에선 빼고. 그리고 글을 쓸 때도 울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하다가 글을 쓰다가 새벽이 온다. 내일은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일단 오늘은 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