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루틴
뜨거운 여름이 가고 드디어 가을이다. 누군가 그랬지. 봄!-여어어름-갈!-겨어어어어울~ 이렇게 계절은 지나간다고. 소리 내 읽어보면 알 것이다. 봄과 가을은 아주 쏜살같이, 그래도 존재감 있게 지나간다.
목소리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에게 환절기는 쥐약이다. 어릴 땐 목이 이렇게 약한 줄 전혀 모르고 지냈는데, 한 5년 전쯤부터 체질이 바뀌었나 보다. 바깥공기가 조금만 차지면 아침엔 어김없이 목이 쉬어있다. 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을 조심해야 하고, 지금 같은 가을엔 방문을 활짝 열고 자면 목아픔 100퍼센트 당첨이다.
내가 오전에 목소리를 쓰는 일을 잘 잡지 않으려 하는 이유다. 명강사, 명아나운서들은 새벽부터 자정까지 시간대 상관없이 고운 목소리를 유지해야 마땅하지만 그들보다 스케줄이 여유로운 나는 괜찮다. 정말 괜찮다. 일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아서 아직까지는. 목관리를 하며 내 컨디션에 따라 일정을 짤 충분한 여유가 있다. 긍정적인 건 내 장점이다.
아직 엄마를 찾는 둘째와 함께 자다 보니 아이와 나의 온도차가 꽤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잘 때도 몸에 열이 많은 아이는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린다. 잠들고 초반에 그리 땀을 많이 흘리다가 새벽녘엔 또 확 식어버려서, 열 살이 된 지금까지도 한 번씩 깨어 살펴야 한다. 어쨌든 처음부터 이불을 둘둘 말고 자려는 나와는 너무 다른 온도를 가진 아이다.
그래서 선택한 대안은 방문은 살짝 닫고 이불은 반만 덮어주기. 나는 다 덮는다. 아이는 그렇게 자다가 남은 반도 이내 뻥뻥 차버리기 일쑤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정체된 방 안의 따뜻해진 공기에 만족한 숨을 내쉬며 이불을 끌어안고 잠에 빠져든다. 초가을까진 이렇게 하면 아침에 목 상태가 조금은 괜찮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시면 도움이 됐다.
가을은 '갈!'이라더니 역시나, 빠르게 깊어간다. 요즘은 새벽의 찬 공기에 건조함이 더해졌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열대야에 높은 습도에 온 집안이 너무 촉촉 아니 축축해 고통의 탄성이 절로 나왔건만, 이젠 살갗이 갈라지는 건조함의 시작이다. 목에는 여름이 좋았다. 목에 가장 좋은 건 촉촉함을 유지하는 것. 미지근한 물.
메마른 가을의 한가운데, 이젠 가습기를 꺼낼 때다. 초가을의 루틴에 습기를 더해준다. 방 문은 살짝 공기가 통할 정도로만 열린 채로 닫아주고, 너무 덥지 않은 차렵이불을 덮고 가습기는 약하게 튼다. 더 건조한 겨울을 위해 가습기 단계도 조절해야 한다. 아침엔 역시 미온수 한 잔.
아침 식사 후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나도 이제 마흔이니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횟수가 늘었다. 일곱 살 많은 남편이 뜨거운 국물로 목을 지지듯 꿀꺽, 삼키며 좋아하는 걸 보면 매번 은근한 타박 삼아 "국물이 그렇게 좋아?" 하는 나지만 나도 그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안다. 겉피부도 늙는데 속피부야 그대로겠는가. 목도 아마 쭈글쭈글해지며 그 사이사이 온기로 채워주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을 거다. 카페인은 우리 몸에서 수분을 앗아간다. 하지만 좋은 점도 많으니 하루 2-3잔 정도는 즐겨주되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모닝커피로 기분전환과 잠이 덜 깬 뇌를 깨웠다면 남은 빈 잔엔 따뜻한 물을 채워 넣고 일상을 이어가자.
이전엔 오전 촬영이 있는 날은 마스크를 쓰고 잔 적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스크는 저 멀리 침대 아래 떨어져 있곤 했지만 그래도 효과가 조금은 있었다. 이것 역시 급할 때 써먹을 방법으로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이제 살살 목을 풀어줄 차례다. 혼자 있거나 별로 말할 일이 없는 날은 확실히 목이 늦게 풀린다. 처음부터 고음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해선 안 되고, 따뜻한 물로 목을 축여가며 조금씩 소리를 낸다. 목을 조이며 긁지 말고 충분히 목구멍을 열어준다는 느낌으로. 아.. 갑자기 수업하는 느낌인데 이건 복식호흡 발성연습에 대해 적은 글에서 자세히 설명했었다.
https://brunch.co.kr/@halfwriter/51
목소리가 잘 쉬지 않도록 발성을 잘하라는 강의를 하고, 책에서도 그리 열심히 설토한 나인데 환절기 공기에 지고 말다니. 사실 좀 분하다.
아무래도 내가...
입을 벌리고 자나보다.
<건조한 가을 목 관리 루틴>
- 초가을
창문은 완전히 닫고 방문은 공기가 통할 정도만 남겨 놓고 닫은 채 잔다. 얇은 이불도 잘 덮어줘야 체온이 내려가 목까지 굳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방 안에 수건 빨래 몇 개를 미니 건조대에 널어 두면 좋다.
- 깊은 가을
방 문은 살짝 공기가 통할 정도로만 열린 채로 닫아주고, 조금 더 두툼해진 이불을 덮고 가습기를 약하게 튼다.
- 공통
아침에 일어나면 미온수 한 잔. 모닝커피 후에는 따뜻한 물을 채워 틈틈이 마셔준다.
목을 열고 약한 발성부터 해보며 신문 기사나 책을 읽으면서 살살 목을 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