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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보고 있다.

대표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하는 난감함에 관하여

자, 오늘은 좀 솔직해지겠습니다.

그래요. 거 글 쓰는 분들, 솔직히 어디까지가 진짭니까?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는데요, 내가 쓰는 사람이 되고 나니 그게 그렇게 궁금해지더라고요. 원래는 그냥 다 믿었어요. 좀 순진했던 거죠. 슬프게 쓴 글은 슬픈 대로, 웃기게 쓴 글은 웃긴대로. 100퍼센트 작가의 진짜 이야기라고만 믿었어요. 뭐 맞을 거예요, 진짜 얘기는. 그런데 과연, 글에서 표현한 작가의 생각도 완전한 진심일까요?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제 포부는 야심 찼어요.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름 자신이 있었죠.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일상을 담은 시리즈라, 처음엔 아무래도 동고동락하는 남편 눈치가 좀 보였어요. 둘 다 집에서 일하는 요즘이니, 그 사람이 은근히 많이 등장했거든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가 작가가 되었다고 자랑질에 구독까지 시켜둔 터라,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역시나, 남편은 읽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요. 안보더라고요. 서운하긴커녕, 마음이 편안했죠.

제가 하고 있는 일 중 유튜브 영상에 출연하는 일이 있는데요, 몇 년째 그건 잘 모니터링해주고 있어요. 그 일은 하도 오래 해서 그런가, 화면에 나오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부담이 없어요.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어서 그런가 봐요.

반면 인터넷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건 동일하지만, 말로 하는 게 아닌 글로 써서 이야기를 하는 이 브런치라는 콘텐츠는 다르더군요. 아무것도 없는 흰 바탕에 제목, 소제목 적어 넣고 나의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 일. 내 시간과 수고도 더해지지만 무엇보다 내 속마음을 공개석상에서 떠드는 것과 다름이 없었어요.



©픽사베이



남편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딱-하고 치는 느낌을 받았어요. 모니터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기분도 들고요.

그래요, 바로 우리 대표님이었어요.

대표님은 날 브런치로 끌어들인 장본인이에요. 글을 쓸 생각도 없던 저에게 기이하게도 영감을 불어넣어 주시고, 나도 해볼 만하겠다는 묘한 자신감을 갖게 만들어 어느 일요일 새벽 노트북 앞에 앉게 한 대단한 분이죠.

그래서 나의 재택근무 이야기를 연재하겠다고 결심하고 난 후 처음엔, 이 일을 하게 된 아름답고 운명적인 이야기를 훈훈하게 풀어갔어요. 술술 쓰다 보니 좋은 점에 이어 별로인 점도 써볼까 싶어 지고, 육아도 잘하고 싶지만 내 커리어도 놓고 싶지 않아 지는 욕심 많은 내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어요. 그러면서 저절로, 점점 솔직해지더군요.

은근히 대표님을 까기 시작했어요. 살살 돌려까다가, 에라 모르겠다 확 내지르기도 했어요.

후-

쓰고 나니 마치 대나무 숲에서 신나게 입을 턴 것처럼, 아주 속이 시원했어요. 뭐 욕을 쓴 건 아니에요. 우리 대표님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그냥, 솔직한 내 회사 생활 이야기, 업무를 하면서의 감정, 느낌, 이런 것들을 하나씩 풀어 가는데, 이상하게 발행을 하고 나면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

저는 보통 글을 밤이나 새벽에 쓰거든요. 아이들이 좀 조용한 시간이 내리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여하튼 그렇게 글을 완성하고, 퇴고하고, 깊이 고민도 안 해요. 몇 번 되뇌다 에라 모르겠다 발행 버튼을 누르고 잠을 청하죠. 사실 발행하는 그 순간이 가장 짜릿 하달 까요. 작가님들은 다 아실 거예요. 그죠?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해요.

보통은 굿모닝을 외치고 이모티콘 하나 날려드리고, 그날의 업무를 쭉- 스캔한 뒤 to do list를 다다다다 적어서 엔터를 쳐요. 그런데 그 전날 밤 발행 버튼을 누른 날에는요, 나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고 '자진납세'를 외치며 브런치 글 링크를 먼저 보내게 돼요. 마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느낌과 자수해서 광명 찾자, 이런 느낌을 섞어 놓은 듯한 기분으로요.



이런 식이죠



우리 보스는 굉장히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분이에요. 늘 깨어있죠. 글도 많이 쓰시기 때문에 사실 누구보다 솔직한 글에 능하시고, 그런 걸 추천하는 분이랍니다. 절 많이 격려해 주시죠.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본인이 대표라는 거예요.

그게 달라요.



.....



이것 보세요. 아마 이거, 소심한 20대 아가씨 같았으면 버티기나 하겠어요?

재수 없다는 건지, 잘 썼다는 건지.

그런데 사실 저 말은, 제가 먼저 썼어요. 재수 없게 멋있다고요. 진짜거든요. 그 정도로 대표님이 너-무 좋아요. 하하하.


어쨌든 전 우리 대표님을 통해 글을 쓰게 되었고, 일 하면서 쓰는 수많은 업무 메일과 심지어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매일같이 말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어요. 대표님이자 글쓰기 멘토임에 틀림없는 분이에요.

그래서 배운 대로 다 내려놓고 하고는 있는데,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깜짝 놀랄 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막 쓰라고 하면서 실은 우리 회사 다니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직원의 글이, 얼마나 궁금하겠냐 이 말이에요. 휴, 제가 너무 잘 알죠?


그러니까 이 글 역시 대표님이 읽게 되실게 뻔해서 말인데요. 음 그러니까 저는요,


진짜로 정말로 우리 대표님을 하늘만큼 땅만큼 존경합니다. 최고의 보스예요.


라고 쓰고 마무리해야만 해요.

이게 바로, 인생이니까요.








#전이만또자진납세하러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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