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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할 놈의 카톡

외로운 재택러를 구원해 준, 월 3900원의 행복

결혼 전 풀타임 직장인일 때 나란 사람은, 회사에서의 생활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류였다. 그래서 팀원들과 사적으로도 친해지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진짜 친구나 언니 동생 관계가 되기도 했다. 어차피 내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이 사람들과 이왕이면 잘 지내고 싶었고, 그 안에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재미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안 그러면 인생이, 씹다 버린 껌 마냥 너무 질기고 팍팍하기만 할 것 같았다.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재택근무자다. 

옆자리 동료 따위 없는 외로운 재택러. 상사나 선배는 모니터 속과 전화기 너머에 존재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고 삶의 의미를 찾던 내게 재택근무라는 것은 외로운 섬에서 홀로 헤엄치는 듯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타닥타닥, 적막한 방에서 울리는 타자 소리만이 내가 지금 일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유일한 무언가...라고 하니 너무 감상적이고, 그냥 좀 재미가 없었다. 뭐 사실, 거의 그런 생각 할 새도 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 나에게 동료가 되어준 것은 바로, 카카오톡이었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애증의 카톡. 한낱 애플리케이션이 어떻게 동료가 되냐고? 내 얘기를 잘 들어보란 말이다.




재택근무의 장점은 사실 많다. 자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일할 수도 있고 복장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며, 마음대로 간식을 퍼먹으면서 일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냥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하지만 반대로 회사에겐 이 부분이 단점일 것이다. 이 재택러가 지금 일을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본인 업무 시간에 해야 할 일만 잘 해낸다면 크게 뭐라고 하지 않는 분위기긴 하지만 그래도. 상사나 대표 입장에선 직원이 어떻게 하는지 조금은, 아니 꽤나 신경 쓰이지 않을까 싶다. 그냥 내 생각이다.

그래서 처음엔 일하다가 화장실 가는 시간마저 눈치가 보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아무도 안 보는데 왜? 하겠지. 이유는 바로 카톡이다. 스마트폰을 쓰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사용 중일 바로 이 카카오톡은, 업무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면서 동시에 감시자이기도 하니까.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화장실이라도 갈 때 꼭 카톡이 울렸다. 그렇다고 잠깐 가면서 휴대폰을 챙기기도 그렇고. 나 혼자 괜히 마음이 급했다. 


놀고 있는 줄 아는 거 아니야? 와, 나 진짜 열일했는데. 잠깐 쉬는 건데 오해받으면 억울한데. 


커피 한잔 내리면서도 괜히 서두르게 되고, 개인적인 전화라도 와서 상대방 이야기가 길어지면 마음이 초조했다. 그러다 보니 집중해서 장문의 메일을 쓰다가도 대화창이 깜빡이면 빛의 속도로 마우스를 움직여 대답을 하기도 했다. 대화창을 클릭해야만 읽음 표시가 되는 이 망할 놈의 카톡 때문에.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나는 경험이 쌓였고, 진짜 정신없거나 바쁠 땐 대강 내용이 보여도 일부러 대화창에 커서를 늦게 올리기도 했다. 읽고 대답하지 않는 일명 '읽씹' 보다는 차라리 하던 일 좀 마무리하고 정확히 카톡 내용을 확인 후 대답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랜 기간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좀 해보니, 회사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상황이 생기고, 카톡 답을 좀 늦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결코 한가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의 나처럼 바로바로 대답을 하는 경우 오히려 더 일이 없어 보이는 느낌을 받을 것도 같았다. 


이쯤 되면 외로운 재택근무 중 카톡은 나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세상과 이어주는 무척 중요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재택러의 인간관계는 모두 카톡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카톡이야말로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창구였다.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랄까. 잘 보이고 싶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눈치를 주기도 하고, 토라지게 했다가 일부러 늦게 대답하게 만들기도 하는 마치 남친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아. 내가 드디어 미쳐가는구나 싶었다. 방구석에서 혼자 일만 하더니.

그러다 이젠, 카톡을 가지고 온갖 감정을 다 표현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선물 받고, 아니면 이벤트 참여로 공짜로 받기도 하다 보니 이모티콘이 하나둘 늘었고, 메마른 업무 카톡에서 단비 같은 역할을 하는 이모티콘의 매력에 그만 퐁당 빠져버렸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갈증이 느껴졌고, 그 와중 나를 구원해준 건 바로,



월 3900원의 행복이었다.


이모티콘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


외롭고 적적한 업무 환경과 싸우던 그간의 노력은 메가커피 카라멜마키아또 값인 3900원에 깨끗하게 마무리가 되었고, 단어를 입력할 때마다 나오는 수십 가지의 이모티콘들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동료가 되었다. 

심각하게 일 얘기를 하다가도 피식피식 웃게 만들고, 딱딱한 분위기도 슬그머니 풀어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 심지어 어떤 사람이 한 가지의 이모티콘을 많이 쓰다 보면 그 사람의 이미지가 그런 느낌으로 살짝 굳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 대표님이 즐겨 쓰는 궁녀(정식 명칭 '궁늬여') 이모티콘이 왠지 모르게 점점 그녀와 닮아 보였다는 건, 이젠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말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풉.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의 자구책이었다고 말해 두겠다.

워킹맘이 되기 전에 나는 프리랜서 일만 가끔 하는 주부였고, 자유로운 오전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며 다양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채우곤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하고 집안일에 몰두하기도 하고, 그러다 어떤 날은 친구들, 동네 언니들과 회포도 풀며 참으로 적절히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선 그 황금 같던 (아이들 없는)오전 자유시간이 사라졌기에, 그 척박한 환경에 맞춘 나만의 살아남는 방법이었다고나 할까. 

이젠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지다 보니 카톡에 그렇게 얽매이지도 않지만, 사실 여러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업무 요청을 한다던지, 실시간 톡 알람이 쏟아지는 상황이면 아직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또 직원들이 다 같이 일하는 사무실이라면 고개만 살짝 돌려 한두 마디로 끝낼 걸 일일이 타자를 치며 대화하다 보면, 가끔은 이 편한 재택근무가 한층 더 쓸쓸하고 외롭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세상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다고 하니, 더 이상 비교는 하지 않겠다. 

무엇을 하던, 어떤 상황에 놓이던 지금처럼 노력할 것이다. 난 이왕 일하는 거, 조금이라도 즐겁게 일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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