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생각 Sep 13. 2023

꽃게에게 해명의 시간을,

꽃게에게 해명의 시간을,

꽃게에게 해명의 시간을


김휼


어리숙한 변명이 자라기 좋은 우기입니다


 엄마는 이름 속에 꽃씨를 심어주고 먼 길을 떠났죠 그 뒤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조금씩 눈을 뜨는 꽃씨, 꽃이 되는 꿈을 꾸며 살았어요 꽃,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요 온기 어린 미소를 불러내는 세상 환해지는 말인가요 꽃 피우기 좋은 조건을 찾아야 했지요


 변명은 측면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


 비경 속엔 항상 복병이 있듯 꽃자리 옆에 턱, 하니 자리하고 있는 것이 게, 라니요 꽃과 게는 좀 아니지 않나요 개나 소나, 개발새발, 게딱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될 것 같은 개(게), 가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아요 불면의 밤을 보내며 절반의 실패와 절반의 성공을 가진 이름을 궁굴렸어요 그렇지만 뭐, 다시 출발선에서 신발을 찾아 신었죠


 카이로스의 시간을 걸었어요 측면을 보며 가는 여정은 끝말잇기 같아요 예술적인 속도, 발목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 옆길로 새기도 하고 지나가는 트럭에 집게발이 잘려나가기도 했어요 밀려가는 자막 속 이름을 다 읽지 못하고 떠나보내듯 몇 번의 계절을 그렇게 보냈죠 그러다 스텝이 엉키는 풀섶에서 문득, 기준은 나여야 한다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죠


 옆으로 걷는 일은 슬픔을 밀어내기 좋은 방식이에요


 발이 많아도 앞으로 갈 발이 없는 나에게 정면의 삶은 신기루예요 화려한 조명도 색종이 흩날리는 무대도 나를 스쳐 갈 뿐이죠 발 밑엔 꽃이 지고 있지만 목적지는 까마득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제가 보이지 않거든 이해해 주세요 꽃을 안고 세상의 측면을 다 읽어낼 때까지 풍경 속을 걸어야 한다는 걸, 확고한 신념 같은 게딱지 속에 붉은 속살을 숨기고


 딸각딸각 걷는 내 구슬픈 워킹을



. 2023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작

이전 02화 지평선, 가로는 선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