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1. 일요일의 기록
사람이 눈사람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영하의 날씨가 끝나고 햇빛이 들면 살갗이 녹지 않을까? 그러다 봄이 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사라지는 걸까? 눈사람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기에 이 순간은 더 값어치를 갖게 된다.
한강의 '작별'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주인공은 갑자기 눈사람이 된다. 그녀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잠깐 잠들었을 뿐이다. 이유와 원인도 없이 그녀는 눈사람이 됐다. 눈사람이 된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난방이 틀어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녀는 눈사람이기에 영하의 온도에 있어야만 한다. 이혼한 그녀는 홀로 키운 10대인 아들과 다니던 회사에서 잠깐 인턴으로 일했던 후배 연인이 있을 뿐이었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직감한 그녀는 이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하는 연습을 한다. 아들은 큰 냉동고를 사서 그 속에 엄마가 들어가 있으면 되지 않을까 고민하지만, 어릴 적 눈사람을 냉동실에 넣었다가 눈사람의 공기층이 모두 빠져나가 사그라들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이내 단념한다. 눈은 얼음과 달리 얼음 결정 사이사이에 공기층이 있어서 냉동실에 넣어도 원래의 부피를 유지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포옹도 그녀의 심장을 녹게 만들었다. 그녀는 왼쪽 갈비뼈에서부터 줄줄 물이 흐르는 기분을 느낀다. 물이 흐른 자리에 텅 빈 구멍이 뚫렸다. 사랑하는 마음은 그녀를 점점 녹아 없어지게 만들었다.
눈사람이 된 그녀는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 서 있다. 녹아 없어지고 난 이후, 즉 죽어 없어지고 난 이후에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소중했던 추억들을 상기한다.
소중했던 추억도 뜨거웠던 사랑도 영원하지 않기에 이 순간의 감정과 마음이 더 값어치 있다. 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뜨거운 마음에 녹아서 사라질 마음의 공허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어렸을 때 영원할 거라 믿었던 마음과 애착 인형들은 지금은 모두 사라져 어디에 있는지도 까먹었다.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해서 꼭 누군가의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인 건 아니다. 어떤 이별은 그저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온다 - 토이스토리3, 이동진"
"부디 우리가 도망쳐온 모든 것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기를. 결국 우리가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지 않기를.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동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