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9. 목요일의 기록
선물의 본질은 기쁨이다. 선물은 의도치 않은 데서 오는 기쁨이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기쁘지 않다면 그건 선물이 아니라 뇌물 혹은 애물단지가 된다.
사람들은 선물을 고를 때, 나 자신보다는 선물을 받을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선물은 내 자아를 뛰어넘어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상대방을 받아들임으로써 기쁨의 의미를 알 게 된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mystery. Today is present"라는 명언이 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고, 내일은 예측할 수 없는 미스테리다. 오늘은 의도치 않은 기쁨이 된다. 현재를 뜻하는 영단어가 Present인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이 선물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내가 상상했던 미래가 오늘 펼쳐졌을까. 매일 쳇바퀴 돌 듯 살고 있지만, 분명 변화는 있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요새 나는 시지프스 신화의 시지프스처럼 몽롱한 눈으로 무의미한 바위를 굴리듯 지겨운 하루를 보낸다. 하루를 보내면 또 하루가 시작되고, 그 하루를 보내면 또 다른 하루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은 하루하루가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요즘 내 삶의 목표는 작은 것에도 만족하기, 소확행 실천하기다. 머릿속 비우기, 지루함 견디기. 특히나 요즘 들어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잠깐의 기다림도 참지 못한 채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핸드폰이 없던 어린 시절엔 낙엽 떨어지는 것을 구경하며 버스를 기다린 적도 있다. 하수구에 담배꽁초가 몇 개나 있는지, 구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등 버스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창의적으로 시간을 보냈다.
지루함은 창조의 어머니다. 세상의 모든 재밌는 것들은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요새는 주객인 전도된 것 마냥 자극을 찾지 못해 오히려 지루함을 느낀다. 일상의 지루함, 만남의 지루함, 삶의 지루함.
가끔은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멍하니 지하철을 기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다. 퇴근을 하면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명상을 한다. 머릿속 비우기. 그러다 보면 문득 나 자신에게로 빨려 들어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이고,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일이다. 기다림의 본질은 간절함이다. 간절하지 않다면 기다리지 않은 것.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간절하지 않다면 삶은 허울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는 게 아닐까. 월급을 기다리고, 주말을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리고, 사랑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 기다림에 간절함이 없다면 삶은 그저 무의미할 것이다.
간절하게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간절하게 기다리던 미래도 있다. 사랑을 한다면 나를 간절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꿈을 꾼다면 내가 간절히 원하는 미래였으면 좋겠다.
"결국 사랑은 시간을 선물하는 일. - 이동진, 영화 '만추' 한줄평"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함이 아니라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선물은 의도치 않은 데서 오는 기쁨이다. 오늘은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난 항상 목요일을 기다린다. 선물 같은 목요일, 선물 같은 글쓰기 시간. 시간을 선물하는 글쓰기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