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3. 일요일의 기록
난곡 사거리를 지나며 문득 첫사랑 그녀가 생각났다. 난곡 사거리, 그 근처에 살던 그녀. 초등학교 4학년, 나는 사랑을 알게 됐다. 좋아한다는 감정에의 입문. 하지만 그녀는 사랑의 입문자인 내게 가혹했다. 나는 여타 공략법도 숙지하지 못 한 채 그녀를 놀리고 괴롭혔다. 어릴 적 빵집을 하던 나는 초등학교 무렵에 항상 경도 비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게 바퀴벌레라고 했는데 바퀴벌레보다 내가 더 싫다고 말했다. 그땐 몰랐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서글픈 일이다.
난곡 사거리를 지나며 블루투스 오디오로 네모의 꿈을 틀었다. 그녀는 수련회 장기자랑 시간에 네모의 꿈 노래에 맞춰 율동을 했다. 그녀의 얼굴이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네모의 꿈을 들으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 한 채 아무 미래도 대비하지 않고 무작정 좋아하기만 했던 그때. 지금 내게 그렇게 좋아하는 게 있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No다. 좋아하는 데도 견적이 필요해진 요즘 난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한 가지 일화가 기억난다. 당시 그녀는 학급의 회장이었고 나는 부회장이었다. 방과 후 교실에 남아 담임 선생님을 도우며 교실 뒤편에서 공지사항 같은 걸 적어 붙이는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의자에 올라 대자보 같은 종이에 압정을 꽂았고 나는 그녀의 밑에 서서 압정을 건네주었다. 그러다 그녀의 손을 잡았던 것 같다. 우연히 스친 손길. 여자의 손이 그렇게 부드럽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그녀의 얼굴,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말투 이런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음악, 그때의 촉각, 그때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신호가 바뀌고 난곡 사거리를 빠져나온다. 그녀는 5학년이 되며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나는 그녀를 우연히라도 마주치기 위해 난곡 사거리까지 항상 자전거를 타고 놀러 갔다. 그때는 멀게만 느껴지던 동네였는데 지금 보니 동네가 참 좁아진 것 같다. 차를 끌고 가니 어릴 적 멀게만 느껴지던 그녀의 동네를 순식간에 지나간다.
어린 시절 도보와 자전거의 속도로 기억하던 추억들은 그만큼 오래 남았다. 나이가 들며 기억과 추억의 유통기한이 점점 짧아진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만 가는 것 같고 매년 겪는 추억이라 할만한 기억은 더 빨리 소실되는 것 같다.
PS. 'TV는 사랑을 싣고'가 부활한다면 가장 먼저 그녀를 찾아보고 싶다. 내 첫사랑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