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 정호승 시 1편

2025.03.20. 목요일의 기록

by 허건

오랜만에 글을 쓴다. 쓴다는 게 두렵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두렵다. 내면에 무엇이 있을지 꺼내어 보는 일이 두렵다. 지금 내 속에 있는 건 결핍과 좌절, 우울과 무력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많은 걸 기대했나 보다. "최선을 다 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려 했지만 최선을 다할수록 결과에 대한 간절함이 더 커지는 법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때론 열심히 한 사람에게 보상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다.

저번 주엔 소개팅을 했다. 무척이나 예뻤다.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녀와의 만남은 미적지근했고, 나의 조심스러운 애프터 제안은 정중히 거절받았다. 정중히 거절받았다고 해서 기분이 안 나쁜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욕할 수도 없다. 나도 그녀의 안녕을 기원하며 웃으며 안녕했다. 남겨진 내 모습이 참 처량하다.

이번 주엔 연봉 협상을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매년 연봉 협상은 내 기대에 부응할 만큼 만족스러웠기에 이번에도 많이 기대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액수를 통보받았다. 땡깡 부린다고 연봉을 높여주진 않겠지. 기분이 나쁘다.

그저께는 분노의 힘으로 스쿼트를 무리하게 했다. 평소 하던 무게보다 더 증량했다. 이것조차 못 하면 난 진짜 비참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운동을 끝마치자 허리가 미칠 듯이 아파왔다. 걷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다행히 온찜질과 마사지를 통해 회복했다. 그러나 그날의 내 운동 루틴은 모두 허투루 돌아갔다. 난 운동조차 못 하는 놈이 된 것이다.

지난 한 주 동안 난 일과 사랑, 건강을 모두 잃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세 가지를 모두 잃자 인생이 재미없어졌다.


쳇 베이커의 'Born to be blue'라는 노래가 있다. 십 대 시절의 난 'Born to be blue'였다. 항상 우울하고 부정적인 사람. 인간관계에 대한 결핍감과 성적에 대한 좌절, 자격지심, 무기력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시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인생의 회의감에 대해 써 내려가는 문학과 철학을 좋아했다.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박경리의 토지 서문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끊임없이 희망을 도려내어 버리곤 하던 아픔의 연속이 내 삶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표면상으로는 소설을 썼다. 이 책은 소설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한 인간이 하고많은 분노에 몸을 태우다가 스러지는 순간순간의 잔해다. 잿더미다."

고뇌와 우울은 예술을 지피는 장작이다. 그래서 난 문학을 좋아한다.


에단 호크 주연의 'Born to be blue'란 영화에서 주인공 쳇 베이커는 약물 중독자로 나온다.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의 '라비앙로즈'에 나오는 에디트 피아프도 불우한 삶을 살았다. 아름다운 노래를 남긴 가수들은 모두 제각기 아픔이 있다. 빛을 그리기 위해선 그늘을 먼저 그려야 한다. 지금은 내 그림자의 짙은 부분을 검은색 물감으로 채우는 시간. 명암의 선명도가 짙어지는 날 내 삶의 밝은 부분도 확실하게 빛날 것이다.


"바보는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범부는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현자는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 드래곤라자, 루트에리노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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