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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Apr 08. 2022

타인의 기분


저녁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는데 인중이 갑자기 근질근질했다. 모기라도 물렸나 싶어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인중이 부어오르더니 마취라도 한 것처럼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어! 왜 이러지?’ 하며 자꾸 손으로 만지려고 하니 딸아이가 ‘엄마 자꾸 만지지 마 그러다가 더 부풀어 오르겠어.’ 한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보고, ‘크크크.’ 웃음을 참지 못한다.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다가 거울을 보고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확 올라왔다    

 

혹성탈출에 나오는 유인원을 닮았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 윗입술이 툭 튀어나온 것이 그렇게 추녀일 수가 없다. 아랫입술만 부풀어 올랐다면 오동 통통 매력적이었을 텐데 말이다.

둘째 아이도 자꾸 내 얼굴을 보며 ‘크크크.’ 한다. 웬 만 해서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어서 좋다고 생각했겠지만,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얼음찜질을 해보고, 찬물로 씻어보아도 가라앉질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잘 못 먹은 것이 있나 생각해 보아도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입술은 점점 더 퉁퉁해져서 잘 접히지도 않는다. 마스크를 써봤다.


"엄마 그러면 더 나."


딸아이가 또 참견한다. 거울 속에 못난이가 있다. 누군지 알지 못하겠다.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갑자기 우울해진다.     


남편이 잇몸뼈가 자라,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임플란트를 몇 개씩 할 때도 ‘그래 잘해라.’ 그러고 말았었다. 머리가 텅텅 울렸다고 할 때도, 남자가 왜 이리 엄살이 심하냐고 핀잔을 주었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다.


지인이 대상포진에 걸렸다고 하면 어머 ‘피곤했나 보다.’ 하면서 ‘괜찮아 많이들 걸린 데.’ 하면서도 그렇게 아픔에 동참하기는 어려웠다.

입술이 부어오른 것, 아프지도 않고 조금 못나 보이는 것 하나로도 이렇게 우울하고 속상한데 아픈 사람들 보고, 참 공감을 못 해주었다. 남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야 감히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거울 속의 못난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 마음이 더 못나 보일 수가 없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기 전에 불을 끄고 이불을 덮었다. 뻔히 몇 마디 할 것이고, 지나친 걱정을 늘어놓을 것 같아서였다. 아무런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이 되면 가라앉을 거로 생각했다.

새벽에 잠이 깨서 입술을 혀로 만져보았다. 별로 가라앉은 것 같지 않았다.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었다. 살려주세요. 마음속으로 외쳤다. 입술 하나에 하나님을 외쳐 부르려니 죄송스럽기도 했다. 민망하기도 하면서 꼭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욕실로 갔다. 거울 속에는 못난이가 아직도 있다. 가버렸으면 좋겠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아침밥을 준비하고 불도 켜지 않은 소파에 앉아 책을 보는 척했다. 용케도 남편이 알아차렸다. ‘웬 못난이가 앉아 있나 했어.’ 한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염증일지도 모르니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알레르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염증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내 마음의 걱정은 더 커져 버렸다.     


매일 하던 아침 산책도 거르고  소파에 누워서 깜박 졸았다. 둘째 아이가 줌 수업이 시작이라며 깨운다. 방으로 가서 다시 누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코로나라 병원 가기도 싫은데 어쩌다 보니 병원 앞에 와 있었다.


설마 무슨 큰 병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 차트에 이름을 적었다. 다행히 염증이 아니고, 알레르기라고 한다. 약이 좋다. 주사를 맞고 나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마침 병원에서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아파트 정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나게 수다를 떨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아까의 슬픔은 조금 사라진 듯하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다시 거울을 본다. 아직도 가지 않은 못난이가 서 있다. 남의 상처를 저울 위에 올려놓고 그래도 너보다는 내가 아프다고, 내 아픔만을 내세우던 못난이가 서 있다. 타인의 슬픔에 무지했던 나를 돌아본다. 남의 아픔을 잘 알지도 못했지만, 위로할 줄도 몰랐던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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