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 소설
할아버지는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시달림을 받던 때 태어나 나라를 빼앗기던 해 온 산에 밤 다섯 말을 심었습니다. 오랜 세월의 상처이자 시간들을 헤치고 가을마다 많은 밤을 떨어뜨리는 나무는 할아버지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작가의 말-
우리 나무들도 이 세상에 오고 가는 중에 네 아비와 나처럼 금방 헤어지기도 하고, 너와 나처럼 그 자리에 새 인연으로 만나기도 하는 거란다. 그러니 너는 먼저 그 자리에 섰던 아비의 몫까지 합쳐 다른 나무들보다 더 씩씩하고 반듯하게 자라야 하는 거야. 모든 눈과 바람을 이겨 내면서 말이야
P13
얘야, 첫해의 꽃으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없다. 그건 나무가 아니라 한 해를 살다 가는 풀들의 세상에서나 있는 일이란다.
P14
... 이렇게 예쁘고 큰 밤이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다면
아침마다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요.
P27
...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면 그게 네 눈엔 놀라운 일이겠느냐? 밤을 심은 산에 밤이 나는 것도 당언한 일이겠지... 단지 나무는 콩이나 팥보다 조금 늦게 자라고 늦게 열매를 맺을 뿐이지.
P33
화로에 묻으면 당장 어느 한 사람의 입이 즐겁고 말겠지만, 땅에 묻으면 거기에서 나중에 일 년 열두 달 화로에 묻을 밤이 나오는 것.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