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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un 06. 2022

나무

이순원 소설

책        나무

지은이  이순원

펴낸 곳  뿔



눈부신 꽃들이 지고 난 자리에 연두 잎은 어느새 진한 초록을 머금고 벚나무의 빛나던 꽃자리에는 빨간 열매가 열렸다. 초록인가 싶으면 또다시 색깔을 머금고 열매를 내어 주는 나무를 바라보며 흐뭇한 하루를 맞는다.

그늘 아래 앉아 나무가 주는 풍성한 나눔을 누리며  나무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나무와 나무의 우정, 나무와 사람과의 우정을 그린 소설을 펼쳐 본다.


할아버지는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시달림을 받던 때 태어나 나라를 빼앗기던 해 온 산에 밤 다섯 말을 심었습니다. 오랜 세월의 상처이자 시간들을 헤치고 가을마다 많은 밤을 떨어뜨리는 나무는 할아버지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작가의 말-


눈 속에 어느 집 밤나무 두 그루가 이야기를 나눈다. 늙은 나무와 이제 막 밑동이 자란 어린나무다. 늙은 나무는 산이 아닌 어느 집 부엌 옆에 심겼고 거기엔 아름다운 사연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 땅에 심어서 싹이 난 할아버지 나무"는 "스스로 싹을 틔운 작은 나무"에게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잘 자라나도록 격려하며 용기를 준다. 할아버지 나무가 되기까지 나무를 심어 준 사람과의 인연과 우정과 사랑에 대하여 작은 나무에게 들려준다.


내 삶의 여정에서도 함께 했던 나무들이 참 많았다. 어린 시절 온몸을 부대끼며 함께 놀던 아카시아 나무에서부터 동글동글 풍성한 열매를 떨어뜨려주던 밤나무, 달콤한 열매를 주던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멀리 여행길에서 만났던 자작나무와 길가의 플라타너스까지, 곁에서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시원한 바람으로 위안을 주었던 나무들을 생각해 본다. 나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는 나무가 그리워진다.




문장들

우리 나무들도 이 세상에 오고 가는 중에 네 아비와 나처럼 금방 헤어지기도 하고, 너와 나처럼 그 자리에 새 인연으로 만나기도 하는 거란다. 그러니 너는 먼저 그 자리에 섰던 아비의 몫까지 합쳐 다른 나무들보다 더 씩씩하고 반듯하게 자라야 하는 거야. 모든 눈과 바람을 이겨 내면서 말이야
P13

얘야, 첫해의 꽃으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없다. 그건 나무가 아니라 한 해를 살다 가는 풀들의 세상에서나 있는 일이란다.
P14

할아버지 나무와 인연을 맺은 열세 살에 결혼한 어린 신랑은 집안이 가난했다.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신부와 스스로 살아갈 궁리를 했고 그 방법은 산에 밤을 심어 나무가 자라도록 하는 것이었다. 끼니도 챙겨 먹지 못하면서 민둥산에 밤 다섯 말을 심었다. 십 년이 지나서야 밤나무에는 밤송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 이렇게 예쁘고 큰 밤이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다면
아침마다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요.
P27


...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면 그게 네 눈엔 놀라운 일이겠느냐? 밤을 심은 산에 밤이 나는 것도 당언한 일이겠지... 단지 나무는 콩이나 팥보다 조금 늦게 자라고 늦게 열매를 맺을 뿐이지.
P33

화로에 묻으면 당장 어느 한 사람의 입이 즐겁고 말겠지만, 땅에 묻으면 거기에서 나중에 일 년 열두 달 화로에 묻을 밤이 나오는 것.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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