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마지막 날, 하루 남은 연차를 활용해 딸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방문하게 됐다. 2022년 12월, 딸아이의 수술 이후 정기검진 차 일 년에 한 번은 반드시 이곳에 들러줘야 한다. 병문안이나 장례식 참석 차 대형 병원을 이따금 찾아오는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우리 가족의 사연으로 정기적으로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을 오게 되리란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작년 9월, 두 돌을 맞이하게 된 딸아이는 이제 제법 단어를 이어 붙여 문장으로 말할 줄도 알고, 어른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쫑긋 기울이며, 단순한 의사소통은 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아기에서 어린이가 될 준비를 해나가는 듯하다. 이에 발맞추어 올해는 아이에게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려주기로 했다.
재작년 이맘때즈음, 아이 엄마와 함께 병원을 방문할 적에는 아이에게 따로 어떤 이유에서 병원을 가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준 적은 없었다. 아이에게 설명해 줄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기도 했고, 또 설사 우리의 설명을 아이가 알아듣는다고 해도(그럴리는 없었겠지만), 의사소통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근래 들어 우리 딸아이는 주변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보면 한참을 관찰하는 아이, 그리고 연이어 들어오는 질문. "저건 뭐야?" "응, 저건 기차야." "기차?" 이런 식으로 두 세 차례 아이와의 티키타카를 주고받곤 한다. 카시트에 앉아 바깥 풍경으로 보며, 해와 달을 말하거나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를 보고 비행기 동요를 불러대는 딸아이를 보니 이제 병원 가는 이유를 설명해 줄 때도 된 듯하다.
출발 전, 아이 엄마가 카시트에 앉아있는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뗀다.
"호떡아, 우리 오늘 병원에 갈 거야."
"병원?"
"응, 서울에 있는 아주 큰 병원!"
"싫어." 하며 아이가 얼굴을 살짝 찡그린다.
"그린이가 어렸을 때, 입술이 갈라지는 수술을 받았었는데, 오늘 수술해 주신 의사 선생님 뵙고, 인사드리고 올 거야. 주사 맞거나 아픈 건 하나도 없어." 슬기로운 아내는 아이를 달래는 문장으로 마음을 다독인다.
"응! 괜찮아."
룸미러로 아이의 표정을 살짝 훔쳐본다.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던가?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나이가 되어버린 우리 아이의 모습에 흐뭇해하며, 내비게이션에 '서울아산병원'을 입력한다. 가는 데만 해도 1시간 반에서 걸리던 2시간까지도 걸리는 서울아산병원.
차창 밖 풍경이 점점 고층 건물들로 변해가며 병원에 다다랐음을 알린다. 아이가 차량에 머물러있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아내는 신호 대기 중 옆에 서있는 경찰차도 같이 관찰하고 때로는 쏜살같이 지나는 구급차도 보며 도란도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수술을 마친 2022년 12월 이후, 우리 가족은 아이와 함께 병원 방문하는 일에 큰 부담을 갖지 않는다.
행여나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괜한 걱정은 미리 사서 하지 않고, 되레 최대한 마음 편하게 이곳에 방문하려 한다. (걱정을 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여기 다 모여있나 싶을 정도로 서울아산병원은 언제나 많은 이들로 북적 거린다. 다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극복해 낸 이야기들이 있겠지. 이를 빛내주기라도 하듯 병원 한가운데에는 지난 크리스마스의 여운이 깃든 대형 트리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날, 아이는 오후 진료를 받게 되었다. 아이와 보호자 1명밖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 덕에 나중에 차 안에서 아내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굉장했다. 구순열 수술을 한 아이가 가장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어디일까? 바로 '인중'이다. 갈라진 입술을 붙여야 하는 수술이기에 봉합 후에도 흉터 등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인중을 보고 더욱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며, 호평을 해주셨다고 한다. 참고로 입술이나 코는 성형수술을 통해 어느 정도 대칭을 맞출 수 있다고 하나 인중은 크게 손댈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한다. 현장에서 듣는 아내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 않았을까 싶다. 방문할 때마다, 병원에서는 기록을 위해 정기적으로 아이의 수술 환부를 촬영한다. 수술 경과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는 사진 촬영도 차분하게 응해주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곯아떨어진 녀석을 옆에 두고 아내와 오랜만에 차분한 대화를 해본다. 앞서 말했던 교수님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그날따라 유난히 말도 잘 듣고, 병원에서도 차분하게 잘 따라준 녀석에게 고마움을 표한다는 이야기까지 조잘거리다 보니 어느덧 2024년의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꽉 막힌 강남 한 복판의 도로에서 파란불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잠시 생각에 젖는다.
아이가 한층 더 성숙한 만큼 우리도 성숙했을까? 나는 작년 한 해에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을까? 스스로 되물어본다. 다시 시작된 2025년, 그리고 정신없이 지나갈 세월의 흐름 속에서 무엇보다 일보다 가정이 최우선인 내가 되길 바라며, 딸아이와 아내 각자 바라는 소중한 꿈에 다가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