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말을 하고 하나둘 표현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입가엔 미소가 저절로 번집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죠. 일 년 전만 해도 단어 하나도 제대로 말 못 했던 아이였는데 말입니다.
혼자 먹던 과자도 이제는 한두 개쯤은 나누어 주는 아량도 생겼습니다. 작은 행동 하나까지 기특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얼마나 성장해 나갈지 궁금해 죽겠습니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부의 모습도 조금은 변화되어 감을 느낍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부부였지만, 이제는 아이에게 모든 시선이 쏠리게 된 거죠. 이게 아이 탓일까요? 그럴 리 없죠.
문득 부부 사이의 관계가 조금 소원해진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서로를 가장 먼저 생각했던 신혼 시절은 어느새 조금씩 희미해지고, 우리의 하루는 아이의 일정에 맞춰 돌아갑니다.
아내에 대한 마음은 여전하지만, 표현이 서툴러질 때가 많습니다. 툭툭 내뱉는 말투며 쉽게 예민해지는 제 모습을 보면, 어린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작은 다툼이 있었습니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감정을 참지 못한 날이었죠. 행복하게 마무리될 하루가 순식간에 흔들렸습니다.
그날, 저는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했던 걸까요? 어설픈 화해 이후, 시간이 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뜻하지 않게 아내와 하루를 함께 보낼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만의 시간이 생긴 거죠. 카페에 들러 마주 앉았습니다. 아내는 대인배답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듯했고, 저는 솔직해질 기회를 얻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렇게나 빠르게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아내 앞에서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겠죠. 제가 건넨 화해의 손짓은 무엇이었을까요? 곧 다가올 문학 공모전을 준비하며 써 내려간 글의 초안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단 한번 보여준 적 없는 글이었죠. 아내는 못 이기는 척, 제 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렇게 슬픈 이야기도 아닌데 말입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하지만, 날카로운 말로 아내를 찌른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늘 아이 앞에서는 속이 넓은 척했던 사람이니까요. 부부가 마음을 합하여 집을 짓는 것만큼 훌륭한 일은 없습니다.
부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의 단단한 가족 공동체를 꾸리는 것입니다. 각자가 아닌, 이제는 하나가 되었으니 책임질 수 있는 말과 행동에 더욱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날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낳아준 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알량한 자존심 덕분에, 이를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