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8세, 하프 마라톤에 도전한 이유

by 자향자

1987년생 토끼띠 직장인,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 그리고 만 38세. 내 인생을 대변하는 단어들이다. 지금의 삶이 이렇다면, 나의 어릴 적 모습은 어땠을까? 항상 삶에 주눅 들어 있었다. 겁이 참 많은 아이였다. 어두컴컴한 공간을 싫어했고, 귀신이라는 존재도 참 무서워했다.



나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아이들에게 맞설 용기가 없었으며, 아무 말도 못 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학창 시절도 이와 비슷했다. 숫기가 없어서 가만히 있다가 뒤돌아서 혼잣말을 내뱉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무려, 5년간 백수 생활을 했다. 딱 절반으로 나누어 2년 반 정도는 사기업을 준비하느라,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지리도 안 풀리는 인생에 자신감이라는 게 있을 리가 만무했다.



어쩌다 운 좋게 직장을 잡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딸아이 하나까지 키우게 되면서, 나는 언젠가부터 흔히들 말하는 보통의 삶을 살게 됐다. 이 정도면 삶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이 생길 법도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알 수 없는 갈증은 지속됐다.



아내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그리고 가정을 멋지게 꾸리기 위해 달려오면서도 마음 한편에 공허함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말한다. 과연 이 말이 맞는 걸까? 항상 되뇌었다.



2024년 12월 한겨울의 어느 날, 지금보다 역동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누가 떠밀어서 나아가는 삶이 아닌, 남들이 말하는 삶 대신,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어느샌가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무엇으로 온 데 간데 사라진 나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나의 결론은 달리기였다. 정확히는 마라톤. '마라톤이라면 기억 저 편으로로 사라졌던 자신감을 되찾아 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일반화되어 간다. 열심히 공부해서, 흔히들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과 같은 고연봉의 직장에 다니는 게 꿈처럼 되어버린 현실이다. 이는 마치 누가 누가 더 빛나는 톱니바퀴가 될 수 있는지 경쟁하는 것과 같다. 언제든 교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살아감을 자처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60세 나이가 되어 은퇴를 하게 됐을 때, 나는 단편 일률적으로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까. 보통의 삶을 사는 것도 그리도 어렵다는데 혹시 나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번을 고민해도 답은 한결같았다. ‘하고 싶은 건 해야 한다’



나답게 살아가기 프로젝트의 첫 번째 도구로 나는 마라톤을 선택했다. 끈기와 인내의 대명사라 불리는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정복할 수 있다면, 자신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가장 빠르게 자존감을 높일 방법은 뭐가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자. 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단번에 쉽게 모아낼 수 없다. 권력? 서민에게 권력은 먼 이야기다. 사랑?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멋진 사람이 되고픈 욕심이 생기지 않을까. 그보다 빠르게 자존감을 높일 방법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운동이다. 다른 여타의 것들보다 빠른 성과를 확인할 수 있으며, 심지어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결과물이 필요했다. 내게 필요한 건 기록이었다.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던 일, 하프 마라톤 완주로 내 자존감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대공황을 극복한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스벨트는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이미 절반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하프 마라톤 완주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완주하겠다.”라는 다짐이었다. 그 다짐은 두 달 만에 하프 마라톤 정복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



여러분은 어떤가. 아직도 이 도전이 두렵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해볼 만할 것이라 슬슬 생각이 드는가. 다음 화에서는 하프 마라톤은 뛰기 전 내가 도대체 어떤 상태였는지 상세히 말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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