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서른 후반의 나이가 될 때까지 내가 하프 마라톤을 뛸 것이라 상상해 본 적은 한사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체력이 약해 빠져있기도 했고, 세상 누구보다 끈기가 없다고 자부해 왔던 나였던지라, 인내를 필요로 하는 ‘하프 마라톤’이 내겐 사실 어불성설이었다.
군대에서 강제적으로 뛴 일 이외에, 전역 후 사회에 다시 나와 내가 운동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군대에서 매일 아침 구보를 그렇게나 했으니, 손사래를 칠 수밖에. 그나마 축구라는 구기 종목을 좋아하긴 했었다. 내가 잘한다기보다, 여럿이 어울려 하는 운동이니 특출 나게 무언가를 잘하지 않아도 묻어갈 수 있는 운동이 어서였다.
취업 준비를 하고, 공무원 수험생활을 하며 운동할 일은 사실 더더욱 없었다. 주기적으로 산책도 하고, 운동하며 환기를 해줬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당시 나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저 도서관 의자에 앉아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니라 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았다.
얼떨결에 시험에 합격하긴 했지만, 뭐. 전적으로 온종일 책상에 붙어서라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어땠을까? 취업도 했으니, 기특하게 이제 시간을 내 운동할 생각을 했을까? 당연지사 아니다.
낯선 사회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회식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나름 치열하게 보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경기도에 살고 있는데, 경기도에서 직장인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일만 해도 당시 내겐 벅찬 일이었다. 여러분의 말이 맞다. 다 핑계다. 하나, 시간이 그토록 소중한 것인지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인생의 테이프를 조금 빨리 감아 보려 한다. 직장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다. 결혼했을 당시 둘 만의 시간을 보내느라 여념이 없던 탓에 운동은 저 먼발치에 있었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육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만 3살을 앞둔 딸아이의 아빠가 된 최근까지도 그러했다.
육아 또한 운동의 일부라고 생각한다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만큼 힘이 든다는 이야기지 운동은 아니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선 더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렇게 2009년 군대를 전역한 이후 2025년까지 16년간 운동한 일은 손에 꼽았다. 공무원 수험생활 중 정신을 다잡고자 참가했던 10km 마라톤 대회 정도가 전부다.
그럼 운동을 한 것 아니었냐고 묻는 이가 있을 수 있겠다만, 앞에서 말했듯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고 참가하기도 했고, 완주는 했지만, 차근히 준비해 결과물을 낸 것은 아닌지라 뿌듯함은 일부에 불과했다. 오기로 해냈다고나 할까.
사람들이 항상 내게 던지는 질문 하나가 있었다. “군대 다녀왔어요?” 마른 체형을 지니고 있던지라 이런 질문이 꽤 익숙했다. “네, 다녀왔어요.”라고 답하면, 의외라는 표정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만큼 나는 연약하고 끈기 없는 세 살배기 딸아이의 아빠였다.
그럼 정신적으로는 어땠을까? 여러분이 추측하는 그대로다. 목표는 있지만, 실천 한번 제대로 한 적 없는 사람이었다. ‘누가 먼저 빨리 포기하나’라는 대회가 있다면 아마도 내가 상위권에는 들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포기가 굉장히 빨랐다. 조금만 어려워지면 쉽사리 포기해 버리는 성격은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은 항상 나를 뜨끔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포기가 빠른 내가 수험생활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게 아이러니할 정도다. 지금 수험공부를 다시 하라면 다시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정신이나 신체나 모두 불완전했다. 입으로만 내뱉는 자신감, 실제로는 행동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한방에 전환해 준 도구가 내겐 ‘하프 마라톤’이었다.
이제 어떤가. 하프 마라톤 완주가 혹시 나와 같이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 당신에게 더 큰 자극제 그리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당신은 변화를 위해 이 글을 읽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라는 이야기가 아닌 그 절반을 뛰어내자는 이야기다. 그 정도는 해볼 만하다. 두 달이면 하프 마라톤 정복할 수 있다.
자. 이제 여러분은 나와 함께 하프 마라톤에 뛸 준비가 되었다. 그럼 다음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렇다. 장비가 필요하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달리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39살 아저씨는 어떤 장비로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는 데 성공했을까? 그리고 달리기는 정말 돈이 안 드는 운동일까? 다음 화에서 전개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