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살 아저씨의 러닝 장비

by 자향자

SNS를 보면 요즘 러닝이 대세인 듯하다. 자신의 러닝 일지를 올린다든지 또는 완주 기록을 공유하며 성취감을 맛보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SNS를 보면 프로급의 실력자가 즐비하다.



작년, 어느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마라톤을 뛰는 모습에 열광하며, 너도나도 뛰는 분위기가 덩달아 형성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보기도 한다. 완주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여기에 하나 더해보자면, 그간 골프, 테니스와 같은 고급 스포츠 문화를 즐기던 이들에겐 훨씬 덜 부담스러운 스포츠라고 여길 수 있기에 러닝이 대세로 주목받게 되진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렇듯 최근 러닝이 주목받으며, 사람들은 골프, 테니스 장비에서 러닝 장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신발 한 켤레에 30만 원이 훌쩍 넘는 ‘카본화’라는 러닝화, 20만 원대의 스포츠 선글라스와 같은 스포츠용품에 더해 에너지젤과 같은 식품까지 러닝 관련 업계는 대활황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식스는 전년 대비 매출이 31% 상승했다.)



오죽하면 어느 신문기사에서 ‘지갑은 닫아도, 러닝화는 산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도 써대지 않았겠는가. 그럼 이 시점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39살 아저씨는 혹시 어떤 러닝 장비를 갖고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게 됐을지 아주 조금은 궁금하지 않은가?



사실 내가 러닝을 시작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시간에 구애 없이 혼자 할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돈이 많이 안 든다.’ 이 세 가지였다. 공무원이란 직업 덕분에 턱턱 고가의 러닝 장비를 산다는 게 내 기준에서는 쉽게 허락이 안 됐다. (월급을 많이 받았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비싼 게 예쁘고, 기능도 더욱 좋으리란 걸 안다. 누구인들 좋은 장비를 갖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러닝 장비에 큰돈을 들이지 않았다. 그럼 내가 하프 마라톤 완주를 위해 구입한 장비는 무얼까 궁금하지 않은가. 이는 다음과 같다.



6,800원짜리 러닝 벨트, 4개에 8,160원 하는 헤어밴드, 29,200원짜리 러닝복 세트, 131,000원 스포츠 선글라스 내가 하프 마라톤 완주를 위해 구매한 장비의 전부다. (선글라스는 정말 한 달이나 고민했다. 근데 도저히 눈이 부셔서 못 뛰겠더라.) 운동화는 어떻게 했냐고? 작년 9월에 53,530원짜리 푸마 러닝화 하나로 달린 게 전부다. (본격적인 러닝은 6개월이 지나서야 시작했지만.)



어쨌든 이를 모두 더해보면 228,690원이 나온다. 더욱 엄밀히 따지면 실제로 내가 하프 마라톤 참여를 위해 투자한 금액은 175,160원에 불과하다. (장비 전체 가격 중 선글라스 가격이 75%다.) 이것도 많이 썼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바로 러닝화를 검색해 보기 바란다. 마음에 드는 러닝화는 한 켤레에 혹시 얼마 정도 하는가.)



내가 굳이 러닝 장비에 큰돈을 들이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이상한 나의 오기 때문이었다. 좋은 장비를 착용한다고 해서, 나의 건강이 훨씬 더 좋아지는 일은 아니었다. 단지 마라톤은 내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일이고, 끈기를 배우기 위해 시작한 러닝이었기에 비싸고 좋은 장비는 있으면 좋았겠다만 없어도 사실 큰 상관없었다. (장비로 기록을 살 순 없는 일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비싼 장비가 없더라도 완주는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마른 체형이다. 조금 더 가볍게 뛸 수 있다. 이는 마라톤 하는데 조금 유리한 조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SNS에서 볼 수 있듯이 탄탄한 근육질의 체형으로 월등한 실력으로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 수두룩 빽빽이다.



근거 없는 나의 자신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독일의 철학자,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자신을 믿어라.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멋지지 않은가. 당신 자신을 믿는 순간, 그다음부터는 모두 과정으로 변해간다는 사실 말이다.



완주를 넘어 그 과정을 글로 담아내고 있다는 게 사실 지금도 놀랍다. 왜 인생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장비가 좋아서가 아니고, 내가 엄청난 체력을 지닌 사람도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 그런 나도 하프 마라톤 완주했다. 여러분이 못 할 이유는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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