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내 어설픈 설득으로 마라톤을 결심하게 됐다고 가정해 보겠다.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고, 장비에 큰돈을 쓰기 않기로 했다고까지 조금 무리하게 가설을 세워보겠다. 그런 다음 여러분이 즐겁게 러닝을 하기 위해선 또 무엇이 필요할까.
'꾸준히 기록하는 것'을 추천한다. 기록은 단순한 메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억력을 보존하고, 목표를 더욱 명확히 하며 여러분의 하프마라톤 정복 과정에 아주 큰 기여를 할 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 산 증인이다.
여러분의 러닝을 기록할 도구는 주변에 무수히 많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는 운동을 기록할 수 있는 앱의 종류가 다양하다. 초창기, 내가 사용했던 ‘홈 트레이닝’이랑 앱을 비롯해 최근에 내가 사용하는 ‘나이키 런 클럽’ 그리고 입체적으로 운동량을 기록해 주는 ‘가민 스포츠’까지 아직도 내가 모르는 운동 앱이 수두룩할 것이다. (‘나이키 런 클럽’은 실내 러닝도 기록할 줄 아는 똑똑한 앱이다.)
이 수많은 운동 앱 중 하나를 여러분의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기록을 시작하는 것. 이 단순한 행동 하나가 여러분의 하프 마라톤 완주에 아주 큰 기여를 할 것이라 나는 믿는다.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고 오히려 포기를 쉽게 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두려워했다. 16년 만에 다시 달라기를 하려니, 걱정이 안 되는 게 우스운 일 아니겠는가. 그것도 그저 혼자 연습하는 게 아닌 대회 참가까지 해야 한다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16년 만에 러닝을 다시 시작한 3월 29일의 어느 날, 스마트폰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던 운동 앱을 찾아 다시 활성화했다. (다행히 삭제하진 않았더라.)
하프 마라톤 완주를 위해 지난 두 달간 러닝에 나갈 때마다 여정을 기록했다. 첫 달리기에서 나는 6.03km를 뛰었으며, 나의 기록은 32분 42초였다. 그럼 다음번 기록은 어땠을까? 6.06km 거리를 35분 05초에 뛰었다. 내 기분은 어땠을까? 조금 더 긴 거리를 뛰었지만 그리 좋을 리는 없었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빠르게 더 멀리 뛰어봐야지.’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게 됐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기록의 중요성이다. 기록은 사람을 보다 도전적으로 만든다. 학교에서도 성적으로 등수를 매기고, 직장에서도 근무성적을 수치화시키지 않는가? 심지어 우리가 도전을 앞두는 마라톤 대회에서도 당연시된다.
앞서 말한 세 가지와 다른 것이 있다면, 개인의 러닝 기록은 100% 자신의 의지대로 진행하는 일이기에, 까딱하면 포기하기 쉽다. 기록을 안 한다고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고, 온전히 자신의 주관대로 행해지는 과업이다.
그런데 만약, 이 기록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어떤 결과가 이어질지 상상해 보자. (여러분이 하프 마라톤을 뛰기로 결심했다는 전제하에서 말해보겠다.) 만약, 괜찮은 기록이 나왔다면 여러분은 더 높은 기록에 도달하기 위해 러닝에 더욱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낮은 기록이 나왔다면, 더욱 분발하게 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본능이다.
내 경험을 예로 들어볼까? 10km 마라톤 대회를 3주 앞두고 러닝을 시작했다. 안 조급했다면 거짓말일 게다. 기록으로 나의 상태를 짚어봤다. 완주를 위해 내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디까지 뛸 수 있는지 가늠해보더라.
그러다 조금씩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는 방법으로 페이스 조절까지 하게 됐다. 러닝을 하면서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선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후 실제로 나의 러닝은 조금 더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어느 지점까지는 몇 분 페이스로 달려야 하는지, 완주에 다다랐을 어느 지점에 속도를 더 붙여야 하는지 등의 사항 말이다. 뒤에서 말할 기회가 있겠다만, 가장 중요한 건 여러분의 러닝을 기록하는 일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단순한 일이 여러분의 하프 마라톤 완주에 굉장한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당신의 삶을 기록하면 하나의 작품이 된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여러분의 러닝 기록은 분명, 하프 마라톤 완주에 강력히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