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하프 마라톤

by 자향자

7~8월의 여름 지옥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9월을 맞이했다. 날씨는 여전히 여름이란 계절을 떠올리게 했지만, 내 마음만큼은 이미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한편 지난여름, 11월에 펼쳐질 마라톤 풀코스를 대비해 벌여놓은 일 하나가 있었다. 바로 다시 한번 하프 마라톤을 정복하는 일이었다.



왜 하필 하프 마라톤이었을까? 10킬로 마라톤을 다시 뛰기엔 아쉬움이 있었고, 곧바로 풀코스로 가는 전략은 어불성설이었으니 그 당시엔 하프 마라톤을 한 다리 건너가는 게 제격이라 생각했다. (32km를 뛰는 마라톤도 있다는 사실은 정말 뒤늦게 알게 됐다.)



여름 러닝 훈련을 마칠 즈음을 기해 어느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자신감을 얻고 풀코스로 가는 전략.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대회에서 얻은 예상치 못한 기록과 기쁨을 한번 더 이어갈 수 있다면, 풀코스를 정복하는데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지난 9월 대부도에서 열리는 '안산 대부도 마라톤 대회'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회가 열리는 전날 근처에 숙소를 잡고 하루 묵기로 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 말이다. 그때껏 아내와 딸아이가 마라톤 대회장을 방문한 일은 없었다.



어차피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고, 굳이 이른 새벽부터 가족을 대동하는 일도 미안했던지라 그간 혼자 대회에 참가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의 대회엔 가족이 함께였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남편인 내가 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는 이유가 첫 번째였고, 더 나아가 딸아이와 함께 콧바람도 쐬면 좋을 것 같다는 게 그녀의 말이었다. (사실 고마웠다.)



그날은 굉장한 날이었다. 시원함 가득한 쾌청한 바람이 밀려왔고,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새파란 하늘은 곧 펼쳐질 마라톤 대회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회장까지 걸어가는 길에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새로운 기록을 만들고 싶었다. 지난여름 더위와 맞서 싸워가며 한주 한 주 열심히 내달린 결과를 맛보고도 싶었다. 하프 마라톤을 한번 뛰어봤던 경험도 있으니, 큰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런 부푼 마음을 안고 나의 생애 두 번째 하프 마라톤을 시작했다.



안산 대부도 마라톤 코스는 'ㄱ'자 형태다. 직선코스가 주를 이루고 있고 큰 언덕이랄 것도 딱히 없어 어쩌면 기록을 세우기 좋은 코스로 보이기도 한다. 한데 이런 코스가 내게는 독이 됐다. 계속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달까. 코스도 코스였지만 다른 문제도 있었다. 나 자신에게 너무 기대치가 높았던 것이었다.



지난여름 혹독한 훈련을 했으니 그날의 대회엔 무조건 새로운 기록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알량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너무 기대했던 게 탈이었다. 10킬로 반환점을 지나 돌아오는 길부터는 좀처럼 힘이 나지 않았다. (지난 첫 대회에서 초심자의 행운을 만났던 걸까.)



툭툭- 치고 나가야 하는 순간에 오히려 힘이 빠져버리는 불상사까지 겹치며, 부담은 더해졌다. 저 멀리 피니시 라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끝장을 볼 차례, 저 멀리 보이는 결승점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거의 다다랐을 때 딸아이와 아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분명 뛰는 둥 마는 동하는 느낌으로 결승점을 통과했을 것이다. (딸아이를 발견했을 때 정말 전력질주 했다. 그녀 앞에서 힘든 모습은 보일 수 없었다.)



1시간 46분. 지난번 대회보다 7분이나 늦은 기록이었다.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라톤은 내게 새로운 벽을 다시 두텁게 세웠다. '수고했다.'며 격려해 주는 가족 앞에선 미소 짓는 나였지만,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 기록을 두고 속은 타들어갔다. (그땐 그랬다.)



날씨도 응원단도 모든 게 완벽했다. 딱 하나 나 자신만 빼놓고 말이다. 그날의 대회에서 나는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아직 연습량이 한창 부족하단 걸 첫째로 깨달았고, 자만은 일을 그르친다는 사실도 알게 됐으며, 마지막으로 대회장에서 만나는 가족은 러너에게 큰 힘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쉬운 마라톤 대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단 사실은 덤이다.)



마라톤을 통해 인생을 배워나간다. 겸손함, 인내심, 통제력 이 삼박자가 들어맞아야 무탈하게 '마라톤 완주'라는 결과물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 잡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마라톤을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목표하는 바를 향해 요행 하나 없이 차분히 전진하는 멋진 러너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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