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8km

by 자향자

학수고대했던 9월의 하프 마라톤은 내 기대치와는 상이하게 초라하게 끝을 맺었다.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별수는 없었다. 그게 나의 진짜 실력이었다. 지난 여름날의 극악 훈련이라 여겼던 나날도 결국 겉핥기식이었음을 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한계에 부딪히면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진다. 계속 도전하거나 포기하거나. 나는 끝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대회장에서 백기를 들게 되더라도 내 한계가 어디까지 꼭 한 번은 시험해보고 싶은 오기가 들었다. 대회까지 두 달 남짓 앞둔 시점, 찾아온 침울한 분위기. 이를 전환할 만한 기폭제가 필요했다.



나는 그 발판을 무엇으로 삼았을까? 그제 꺼 뛰어본 거리보다 '압도적으로 긴 거리를 뛰는 것'을 그 도구로 삼기로 했다. 참고로 하프 마라톤 대회 참가 전, 나의 최장거리 주행은 20킬로였다. 일주일에 딱 한번 그 정도의 거리를 뛰곤 했다.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다, 대회장에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얄팍한 생각은 그제 꺼 가로막고 있었다. 맞다. 이 모든 건 오롯이 내 탓이었다.



하프 마라톤 대회 이후 다시 돌아온 주말, 연습에 들어섰다. 그날따라 조금 더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못하면 앞으로 더 힘들어지는 거야.'라는 혼잣말을 계속 되뇌었다. 목표를 과감히 30킬로로 잡았다. 이제껏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거리였다. 평균 주행거리인 20킬로보다 10킬로나 더 되는 거리. 이를 단번에 넘어서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음은 알고 있었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기존에 주행하던 코스의 경우 30킬로가 채 나오지 않아 새로운 코스를 포털사이트 지도를 보며 만들었다. 집 앞 공원을 몇 바퀴 뛰고, 공원 바로 앞 있는 하천변을 왕복 주행한 후, 옆 동네 하천을 왕복해 공원으로 복귀하면 얼추 30킬로가 나왔다.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던 미지의 거리. 30킬로. '될까? 몰라. 일단 가본다.'라는 말과 함께 그날의 여정이 시작됐다.



평소 러닝 연습을 하는 이들이라면 본인들만의 익숙한 코스가 하나쯤 있다. 눈 감고도 다닐 수 있을 만큼은 아니겠다만, 어느 구간은 땅이 고르지 않고, 조금만 더 가면 언덕이 나온다거나 하는 등의 그림은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다. 내게는 늘 뛰어다니던 20킬로 구간이 그런 느낌이었다. 익숙한 20킬로를 지나 드디어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직접 내 발로 뛰어보니, 역시나 새로움이 가득했다. 차창 밖으로 내비치는 주변 풍경은 머릿속에 쉽게 기억되기 힘들다. 하나, 달리기를 하며 보는 풍경은 조금 다르다. 순식간에 스치지 않고, 풍경을 눈에 깊숙이 담아둘 수 있다. 가을의 러닝은 그런 묘미가 있었다. 가을을 배경 삼아 울긋불긋 익어가는 나뭇잎의 풍경을 보며 뛰는 재미도 있었다. 예상치 못한 막다른 길을 만나 길을 돌아가는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



하나, 문제가 있었다. 정작 발을 구를 동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20킬로라는 주행거리에 몸이 맞추어져 있던 탓이었다. 3월부터 그제껏 러닝을 하며 하프 넘는 거리를 뛰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보통 연습 시에도 급수는 별도로 않는다. 최대한 실전과 같이 훈련하는 게 나만의 방식이다. ) 그 한계를 나는 극복할 수 있었을까?



30킬로 넘게 뛰겠다 선언한 그날, 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포기한 셈이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뛰어낸 거리라곤 26.78km.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그럼에도 희망을 봤다. 이전보다 더 많은 거리를 뛸 수 있는 나를 발견했고, 지난 대회의 부침을 한껏 털어낸 나 자신의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사실 26.78km에서 멈춘 그날은 단순히 거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러닝을 하며 얻게 되는 새로운 노하우들이 쌓여 어느새 나는 다시 30km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단단한 러너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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