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를 뛰려면요

by 자향자

비록 30km까지 뛸만한 뒷심은 부족했지만, 어찌 됐건 9월 중순 어느 날의 나는 적어도 25km 내외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완주할 아는 러너 중 한 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기록이 상징하는 바는 내게 꽤 컸다. 일단 '새로운 벽을 깼다.'라는 자신감이 최우선이었고, 잇달아 '풀코스도 이런 추이면 할 수 있겠는데?'라는 부차적인 자신감도 덩달아 쌓여갔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내 사고는 온통 러닝에 집중되어 있었다. 차도 표지판에 기재된 □□시 OOkm라는 글을 읽으면, '러닝으로 가면 얼마나 걸릴까?'라는 기가 막힌 발상을 해댔고, 자기 자랑이라도 하는 주변인들에겐 '그래서 당신 몇 km까지 뛰어봤는데?'를 혼잣말로 되뇌던 시기였기도 했다. 속된 말로 '러닝뽕'이 차올랐던 시기였다.



그런 어느 날, SNS에서 팔로우하던 어떤 이의 글을 하나 우연히 보게 됐다. '풀코스를 뛰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연습량'이라는 비슷한 제목. 눈에 확 들어왔다. 해당 피드에서 이런 말을 했다.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적어도 30km 거리 러닝 연습을 3~4번은 하고 가야 한다. 안 그러면 고생한다.'



'좋아요'를 누르고, 생각해 봤다. '나는 30km를 뛰어본 경험이 있었던가?' 고작 30km도 안 되는 거리를 뛰어놓고, 마치 풀코스를 완주한 것 마냥 자만하는 나에게 건네는 조언 같았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이 앞에서 다소 얼굴이 붉어지기까지했다. 맞다 마음가짐을 다시 가져야 할 시기였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위해선 42.195km의 거리를 뛰던지 아니면 걷다가 뛰던지 둘 중 하나를 지속해야 한다. 제한시간은 보통 5시간이 부여되며, 이 시간 안에 결승점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별다른 공식적인 기록은 부여되지 않는다. 그럼 그 당시 나의 체력으로 완주하는 일은 가능했을까? 아마 20km 정도의 거리만 계속 연습하고 갔더라면, 풀코스 도중 백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SNS에서 만난 그이의 말을 듣고 연습량을 다시 설계했다. 그의 말은 백번 옳고도 남았다. 풀코스 마라톤까지 남은 기간은 1달 조금 넘는 시간. 이 기간 동안 주행거리를 최대한 늘릴 필요가 있었다. 주말 연습을 주로 하는 내게 주어진 기회는 5번 남짓. 댓 번의 기회 중에 3회 이상 30km 이상의 거리를 경험해 본다면, 그가 말한 대로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내 풀코스 마라톤 완주에 큰 기여를 한 사람 중 하나다.)



내가 생각하는 러닝의 룰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먼 거리를 뛰기 위해선, 목표를 크게 잡아야 한다.'라는 룰이다. 당일 10km의 거리를 뛰고 싶다면, 목표는 이에 조금 더해 13km로 잡아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작은 목표는 현재의 능력 안에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뿐이지만, 보다 큰 목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용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실제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러닝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장거리 훈련을 하다 보면 체력의 한계가 밀려온다. 입에서 단내가 나거나 발이 무거워 도저히 한걸음도 내딛을 수 없는 고통은 한계에 닿은 러너를 언제든 멈추게 만들 유인을 제공한다. 자신의 한계를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 나는 목표한 거리보다 조금 더 먼 거리를 목표로 잡으라고 말한다, 분명 뛸 수 있다. 내 경험이 그러했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날 이후, 나의 목표는 언제나 35km였다. 사실 말도 안 되는 목표였지만, 그렇게 무리하게 잡아야만 30km 이상의 거리에 도전할 수 있으리란 걸 나 스스로 알고 있었다. (맞다.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된다.) 최고의 훈련은 당연지사 42.195km를 뛰어보고 가는 것이었겠다만, 사실 그 당시 실력으론 어림도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연습량을 새로 설계한 그날, 나는 몇 km를 뛰었을까?



자그마치 30.07km를 뛰었다. 기록을 더듬어보니 6분 페이스로 무려 3시간 동안을 내리뛰었다. 3월 말 러닝을 시작한 이래 3시간 넘는 시간을 뛰어본 적은 없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이 기력은 다했지만, SNS 온라인 친구(스친)의 '30km 경험 없으면 풀코스 힘들어요.'라는 말 덕분에 있는 힘을 다해 발을 뻗었다, 그날의 나를 칭찬한다. 만약 그날 내가 '에이 나 못해.' 하며 포기했더라면, 완주를 일구어낸 나 자신의 모습을 내년으로 미루어야 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다시는 마라톤을 하기 싫을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주어진 5번의 기회 중 1번의 성공. 이제 2번만 더 성공하면 심리적인 마지노선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럼 주어진 4번의 기회를 나는 잘 살릴 수 있었을까. 글쎄. 다음화에서 좀 더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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