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내게 주는 가르침
복직을 하며 주간에는 회사에 정신을 쏟고 야간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맞벌이 직장인의 숙명적인 루틴이 만들어졌다. 부모님이나 장모님의 도움 없이 아내와 둘이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워보기로 했던 야무진 생각을 했던 순간도 잠깐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 양육은 단순히 부모의 열정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워낸 공무원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쏟아진다. 애를 맡길 곳이 없어 옆집에 염치 불고하고 맡기고 회사에 도망치듯이 출근하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어느 선배는 집에 홀로 두는 것이 염려돼 학교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 학원을 보낸다는 안스러운 이야기도 들었다.
한 귀로 듣고 흘리던 여러 이야기들의 상황을 직접 마주해 보니 그들의 말이 과장되거나 허황됨은 없었던 것같다. 어떻게 해냈는지 오히려 신기할 정도라고나 할까? 근래 들어 육아휴직이나 육아시간 사용 등으로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나아진 상황이지만 선배 공무원들의 경우 육아시간이라는 것은 아예 전무했을 것이며 휴직의 개념도 길게 사용할 수 없는 그림의 떡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름 많은 혜택을 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솔직한 심정으로 사실이다. 직장인 서울에 있는 나와 아내에게 주 5일의 출퇴근길은 쉽지만은 않은 길이다. 하루 넉넉잡아 3시간을 길바닥에 쏟고 있으니 그만큼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당연히 줄어들게 된다.
나의 하루를 잠깐 들여다보자. 오전 6시 반즈음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조용히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친다. 아침은 원래 먹지 않기에 거르고 7시 20분 당고개행 4호선 열차에 몸을 싣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아내와 출근을 함께 하기도 하지만 근래 들어 따로 출근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회사에 도착하면 오전 8시 40분, 한잔의 커피를 마신 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회사의 시간을 보낸다. 오후 6시를 조금 넘기면 재빠르게 팀장에게 인사를 마친 후 종종걸음으로 4호선 하행선 지옥철에 몸을 싣는다. (복직 이후 나는 초과근무를 거의 하지 않는다.)
퇴근길 4호선은 언제나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다. 앉아서 갈 수 있는 확률은 하늘의 별따기이며 그나마 앉아서 가는 구간도 3~4 정거장이 전부다. 나의 영혼을 빼버린 지하철에 내려 나는 주간에 고생한 엄마와 교대하며 아이를 씻기고 함께 놀다가 지쳐 쓰러져 잠자리에 든다.
아내의 경우, 육아를 위해 2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육아시간'을 종종 사용하면서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며 아이와의 시간을 늘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쳐내야 하는 업무량이 있음에도 만사 채 져두고 퇴근하는 아내의 모습에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낀다.
그렇게 주중에는 하루 3시간 정도 아이와 시간을 보낼까? 18개월 동안 아이와 24시간을 함께하다 하루 최대 3시간 선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환경으로 급변되니 아이나 나나 서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아니, 나 혼자만 일수도 있겠지.) 주중에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함에 간간히 육아시간을 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갈증이 사라지진 않는다.
회사 내에서의 긴장감으로 인해 주중에 쌓인 피로감을 푼답시고 주말에는 아이와 동네 놀이터에서 또는 같이 마트 가는 정도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정도면 일도 하고 아이와도 놀아주는 훌륭한 아빠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함께 하는 퇴근길에서 아내가 내게 회사 동료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별 얘기는 아니고 우리 부부와는 다르게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주말이면 도시락 싸들고 이리저리 구경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 대수롭지 않게 귓등으로 넘겨지만 곱씹을수록 아빠로서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체력이 안된다는 망설임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주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내 회사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인간은 언제나 한계를 극복해 왔다. 최악의 상황도 최상의 상황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이는 태도의 문제이지 내 체력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지난 3주 간 주말을 맞이해 딸아이의 손을 잡고 아내와 교외로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기차를 좋아하는 딸아이를 위해 의왕에 있는 철도박물관에 방문해 실물 크기의 기차를 보여주기도 하고, 안성에 위치한 대규모 농장에 방문해 아이와 함께 양에게 먹이도 주고 책에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보며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주말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충청도로 내려가 카라반을 하루 빌려 모닥불을 피워놓고 숲 속의 고요함과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여주며 알차게 주말을 달려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언제나 아이는 곯아떨어졌다. 그 모습이 나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아빠로서 최선을 다해 놀아준 방증 같아 보였다고나 할까? 나 역시 무거운 눈을 꿈뻑이며 돌아오는 길은 피곤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종국에는 이를 뛰어넘는 행복감이 밀려오곤 했다.
아이가 내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삶을 도전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아이이기도 하고 아빠의 타이틀을 상기시키며 내게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 준 대단한 아이이기도 하다. 근래 부정적인 사고로 삶을 이어왔던 나를 위해 '긍정적으로 살아보세요!'라며 환기를 시켜주기도 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변화의 유인을 내게 제공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하며 이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님을 깨닫고 태도의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내게 알려준 것 같다. (말로 표현하기는 조금 난해하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의 품을 떠나게 될 때쯤에는 나는 어떤 모습의 아빠로 녀석에게 인지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동안 딸아이가 내게 어른이 되기 위한 더 많은 울림과 깨달음을 전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