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목표엔 언제나 계획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업무가 대차게 몰아쳐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야 하는 시즌이 있는가 하면 쓰나미가 몰려온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한 바다와 같이 무탈하게 흘러가는 그런 시즌도 있다. 요즘이 내게는 바로 그런 나날이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일만 하는 근로자는 없다고 본다. 커피도 한잔 마시고 점심을 먹고 회사 주변을 거닐기도 하며 치열한 일터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찾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우리네 근로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따금은 부서 내 직원들과 여러 가지 이슈를 가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내 맞은편 팀에 내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기르는 직원 한 명이 있다. 나보다 2년여 정도 앞서 육아를 하고 있는 선배이기도 하며 부서 내에서 일을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항상 그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배우고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업무적인 부분 외에도 최신(?) 육아 정보를 갖고 있는 육아 선배이다 보니 종종 물어볼 거리가 생긴다. 어떻게 양육을 했는지, 뭐 하고 놀아주는지 등등의 육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간다. 이 날은 이런 질문으로 대화의 포문을 열게 되었다. "주임님, 자녀 영어 공부는 어떻게 시키고 있어요?" 3살이 된 딸아이가 하나 둘 문장을 툭툭 내뱉게 되면서 한글은 부모와의 대화로 자연스레 득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영어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할지 도통 마땅한 해결 방안이 안 나오는 상황이어서 궁금했다.
'5살이 된 요즘의 아이들은 과연 어떤 영어 공부를 하고 있을까?'라는 나의 질문이 무색하게 "아직까지는 따로 시키고 있지 않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맞벌이를 하고 있는 부부이며, 양가 부모의 도움 없이 현시대에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부부이기도 하다. 다른 연유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회사 내에서는 질문에도 어느 정도의 선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서 "그렇구나." 하며 얼른 질문을 종결한다.
아이 둘을 중고등학교까지 키워낸 팀장이 자연스레 대화의 흐름에 참여한다. 동네 유치원은 어떻고 하며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현실의 경험을 가감 없이 풀어놓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들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 중 인상적이었던 단어 몇 개는 머릿속에 저장해 둔다. 어느덧 대화의 주제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까지 흘러들어 갔다.
요사이에도 꾸준하게 의원면직(퇴사)을 하는 공무원들의 이야기를 하며 소싯적 엄청난 경쟁이 있던 과거의 영광을 다시 끄집어내 보기도 하며 결국에는 공무원 월급 때문이라며 결론을 내린다. 최근 한 뉴스보도에 따르면, 30대 지방 공무원 의원면직의 비중은 2020년 2,900여 명에서 2023년 4천여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증가의 폭이 상당하며 각 지자체에서는 저연차 공무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여러 방안을 하나 둘 내놓고 있다.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낮은 보수, 간혹 등장하는 진상 민원인들, 연금의 고갈 문제 등이 이 시대의 젊은 공무원들에게 불안감을 조장하고 새로운 꿈을 펼치고 싶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들이 아닐까 싶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기 위해 당차게 나간 그들의 모습을 동경하며 나에게 반문해 본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니?'
18개월 간의 복직 이후 한두 달은 브런치 대나무숲에서만 말하는 것이지만 매일 관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실제로 2022년의 여름에는 관두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는데, 어찌어찌 아직까지는 관운이라는 게 붙어있는지 공무원 신분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의 부침을 넘어 복직 후 두 번째 부침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나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었을까?
첫째,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에게 나무를 벨 수 있는 시간이 8시간이 주어진다면 6시간은 도끼날을 가는 데 사용할 것이다." 섣부른 퇴사는 잠깐의 자유를 뒤로하고 깊은 후회를 안길 것만 같았다. 실행력이라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그 실행을 하기 위해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과정 없이 결론이 나오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선망하는 인플루언서들 모두 이면에는 끝없는 노력과 실패로 빚어진 결과물이다. 마음에는 언제나 사표를 품고 다니는 우리지만 그 마음을 컨트롤할 수 능력을 기르는 것도 우리가 성공적인 퇴사를 위해 준비해야 할 덕목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퇴사는 할 거냐고? 당연히 퇴사할 것이다. 때가 된다면.
둘째, 내 회사가 아니다. 공무원 신분으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그럼 되묻고 싶다. 근로자인 당신은 회사에 온전히 충성하고 있는지 말이다. (공무원은 근로기준법만 적용받지 않을 뿐이지 엄연한 근로자다.) 회사에 충성을 하고 있는 당신은 아마 회사 내에서 임원이 되는 등의 큰 꿈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다만, 나에게는 그런 꿈은 더 이상 없다.
회사 생활을 하며 깨달은 인생의 진리 중 하나는 나보다 능력이 출중한 이들이 널리고 널렸다는 사실이다. 한때 '내가 일을 좀 하는 것 같다.'라고 생각했던 찰나의 순간도 있었는데, 구청에서 근무하며 세상에 대단한 사람들은 정말 많이 있다는 걸 여기서 다시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이들에게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고 나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로 말이다. 일을 안 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단지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되 나만의 방향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전진하는 게 궁극적으로 내 인생을 빛나게 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그렇게 다소 무뚝뚝하게 내가 겪고 있는 두 번째 부침을 이겨내가고 있다.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는 날에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또 실행할 수 있는 부분은 실천하며 보통의 하루와 한주를 보낸다. 그렇게 꾸역꾸역 한 달 그리고 일 년을 넘어 도끼날을 갈아내다 보면 스치기만 해도 절로 베어나가는 나만의 무기를 만들 수 있겠지 싶다. 그렇다면 그날이 나의 퇴사기념일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나의 바람은 정년까지 다니는 게 목표가 아니라 정년 되기 전에 훌훌 털고 나가는 게 나의 목표다. 단 1년이라도, 운이 좋으면 10년이라도 빨리 준비된 퇴사로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은 게 내 소망이다. 꿈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목표는 구체성을 띄고 있다. 지금의 작은 행동의 조각이 나의 목표에 일말이라도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날이 오기까지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최대한 회사에 붙어있어야 함은 물론이겠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될 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