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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May 26. 2020

추억 한 스푼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의 하늘과 지금 어른이 되어서 살고 있는 광역도시의 하늘은 다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옛 추억과 자주 해후하게 된다는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이랬었는데..."


"내가 살던 시골의 하늘은 참 예뻤는데..." 비가 온다는 소식에 고개를 젖혀 하늘을 쳐다보다 보니 문득 어릴 적 시골마을 하늘이 생각이 났다.


하늘색 물감의 색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빛깔에 군데군데 떠다니는 솜뭉치를 바라보며 한껏 감성적인 소녀가 되어보기도 했다. 시골마을 할머니 집 툇마루에 누워 검은색 물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빛깔에 셀 수 없을 만큼의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 중에 별똥별 하나가 떨어지길 기다렸던 여름밤의 추억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 살고 있는 나의 광역도시의 하늘에서는 별들을 보지 못했다. 별들이 뜨지 않는 것보다는 내가 더 이상 하늘을 쳐다보며 살아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던 음악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셨던 날, 단짝 친구와 사소한 오해로 심하게 싸웠던 날, 좋아하던 오빠가 나의 마음을 거절했던 날 등 설익은 나의 마음에 요동쳤던 감정들을 넓고 넓은 하늘색 하늘에 내던져 버리고 크게 숨 한번 내쉬고 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날뛰던 감정들이 고요해짐을 느꼈다. 어릴 적 시골의 하늘은 나의 고민을 묵묵히 들어주고 있었다. "말만 해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지금 와 생각해보니 참 순수하고 감성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느꼈던 그때 그 감정들을 회한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조금은 손발이 오그라지기도 하고 조금은 진부적인 표현들에 어디 누군가에 말하기도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딸아이가 나의 어릴 적 감성적인 부분을 조금 닮아 있는 것 같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5살이었던 딸아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 엄마! 바람이 그네를 밀어주고 있어!""바람이 날 하늘까지 데러 갈려나 봐!" 바람이 조금 불었던 가을날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5살 딸아이의 표현에 놀라 도치 엄마가 되어 남편에게도 친정식구들에게도 놀이터에서 딸아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말하면서 언어천재라고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늘을 보며 한없이 감성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과 바람소리에 바람의 움직임에 한없이 감성적인 딸아이 어린 시절이 조금은 나와 닮아 있는 듯하다. 딸아이도 어른이 되면 나와 같이 감성보다 이성이 앞선 사람으로 변해 버려 그때 놀이터에서 바람과의 추억을 회한하며 "나 그때 참 감성적이었는데..."라고 말하고 있을까?



비가 온다는 소식에 하늘을 쳐다보면서 갑자기 어린 시절 하늘과의 추억에 빠져 버렸던 시간이 꽤 괜찮은 감정을 나에게 전달해 준 것 같아 글로 남겨보았다. 지금은 순수하지 못한 어른으로 변해 버린 나지만, 잠시 나의 추억 속에서 순수했던 나의 어린 시절과 해후하는 것도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서글프고 불안하고 썩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것, 알아가는 것들에도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이가 드는 게 꼭 나쁜 것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는 의미가 있다.


지나온 길을 천천히 회한하다 보면 모든 것들에 의미가 있었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의미 없이 보낸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도 더 이상 의미 없이 보내지 말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 줬던 동기부여가 되었기에 그 시간들 역시 나에게는 의미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하늘 좀 보고 살자! "라고 말을 내뱉어 보지만 역시나 나는 오늘도 하늘보다는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빠져 고개를 한동안 숙이고 있었다.


그래도 추억 한 스푼에 하늘을 볼 수 있었고 , 순수했던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 그때의 감정이 현재의 나의 감정과 와 닿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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