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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Jul 11. 2020

살들아 안녕! 가을에 다시 만나자!

매년 여름 문턱에서만 시작하는 다이어트

겨울 내내 두꺼운 패딩 속에. 박시한 니트 속에 숨어 있던 살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옷을 내 몸에 걸칠수록 사람들은 나에게 하나둘 말을 내던지기 시작한다. "어머! 건강해졌네" "너 살 좀 쪘지?"


나는 베란다 창고 안에 넣어 두었던 폼롤러와 미니 아령을 꺼내 들었다. 매트 위에 올라가서 폼롤러로 작년 가을부터 조금씩 늘어났던 살들에게 이별을 고하기 시작한다. "여름휴가 가기 전까지 5 키만 빼자!"


남편의 직업은 헬스 트레이너이다. 남편이 트레이너로 일한 지는 12년이 넘었고, 직접 헬스장을 운영한지는 5년 정도가 다 되어간다. 남편이 헬스 트레이너이기 때문에 부인인 나는 당연히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편의 직업과 나의 몸은 전혀 상관이 없다. 직업은 직업일 뿐이다. 개그맨들이 집에 와서 과묵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우리 남편 역시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어하는 무기력한 사람이 된다.


나는 어깨가 좁은 편이라 두꺼운 패딩이나 박시한 옷을 입으면 살들이 밖으로 보이지 않으니 날씬 정도는 아니지만 보통 정도는 되어 보인다. 그렇게 작년 가을부터 올해 초봄까지 '살을 빼야겠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지낸다. 하지만 점점 내 몸에 걸쳐지는 옷들의 가짓수가 줄어들고 얇아질수록 숨어 있던 살들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여름의 문턱에 접어들면서부터. 나의 살들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폼롤러 위에 출렁대는 나의 뱃살을 올려놓는다.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이 올라오지만 5분 동안 폼롤러와 나의 뱃살은 함께 해야 하기에 참아 본다. 겨울 내내 한 번도 자극 없이 지내왔던 나의 뱃살이 5분 동안의 자극에 의해 체육시간에 오래 달리기를 한 것처럼 배가 당기기도 하고 얼얼하기도 하다. 다음에는 옆구리 살을 폼롤러 위에 올려 두고 힘을 쭉 빼고 나의 온 무게를 옆구리살에 실는다. 옆구리살 역시 아프다. 너무 아프다. 이마에는 땀들이 줄줄 흘러내린다. 손바닥으로 대충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고 반대쪽 옆 구 살도 같은 방법으로 폼롤러 위에 올려둔다. 다음은 등. 그다음은 허벅지. 그다음은 종아리. 그렇게 한 세트를 마치고 나면 거칠어진 숨소리와 온몸을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을 느낀다. 여기서 그만두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이 나이에 살을 빼서 뭐해. 아줌마는 아줌마 다워야해!. 이러다가 쓰러지면 약값이 더 들겠는데!" 꼭 운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나만의 합리화를 해보기도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반찬거리가 없어서 장을 보러 가야 하는데."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곗거리들을 만들어 내일로 그다음 날로 운동을 미뤄 볼려고도 한다. 한두 번은 이런 나의 핑곗거리와 자기 합리화 방법에 홀딱 넘어가 살 빼는 것이 잠시 중단되기도 한다.


남편과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인가 남편과 내가 나란히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서너 걸음 앞서 있든지. 남편이 서너 걸음 앞서 있든지. 나란히 같이 걸어본지가 언제인지 손에 꼽힐 정도이다. 다른 이들이 보면 남이라고 생각할 만큼의 거리를 두고 걷는다. 유독 두꺼운 옷을 벗어던지고 나의 옷들이 얇아질수록 여름이 다가올수록 남편과 함께 걷는 거리의 크기가 넓어진다. 나와 남편은 여름이 다가올수록 사회적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한다. 함께 나란히 걷고 싶어 발걸음 속도를 남편의 속도에 맞추면 남편은 속도를 더 높이거나. 더 늦추거나. 여전히 우리의 거리는 서너 걸음 차이가 나게 걷게 된다.


다이어트가 너무 힘들어 한 세트 하고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면 이렇게 남편과의 거리 차이를 생각한다. 남편과 나란히 걷고 싶어 마지막 2세트를 마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지고. 배가 당기고 옆구리가 얼얼해도 기분만큼은 상쾌하다. 여름이 다가오기 전부터 5킬로의 체중을 빼겠다고 다짐하고 난 뒤 한 달 보름을 운동하고 나면 둥그런 턱선도 어느새 가름해지고. 살들에 감춰져 보일 듯 보이지 않았던 쇄골뼈 역시 모습을 드러낸다.


살들은 빠지고 나의 자존감은 더해진다. 남편은 나와의 걸음에. 나란히 걷지 않는 것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냥 자연스럽게 늦게 걷게 되고 빨리 걷게 되는 남편의 발걸음에. 나 자신 스스로가 "내가 살이 쪄서?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서?"라는 나의 생각을 덧붙여 버린다. 아줌마가 되면서부터 나의 몸을 치장하는 시간을 빼먹고 살아왔다.


1년 12달을 매일 운동할 수 없다면 겨울 내내 숨겨왔던 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여름의 문턱 앞에서라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서.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여름의 바닷가에 출렁대는 뱃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만. 남편과의 걷는 속도가 늦쳐지거나 빨라지더라도 나의 뱃살 때문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만. 그렇게 나는 코앞에 다가온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 폼롤러와 미니 아령으로 나의 살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다. "살들아 안녕! 가을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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