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는 건 지금 머무는 곳에서 벗어난 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떠나기로 했다. 배편을 예약하고, 숙소 예약을 끝낸 우리에게는 기다림만이 남았다. 출발할 날을 위해 기다리고 기다렸다.
떠나기 일주일 전 아들 민이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콧물이 나고 심한 기침에 열까지. 의사 진료 후 진단은 마이크로플라스마 폐렴이었다. 약 처방과 호흡기 치료를 받고 집으로 귀가했다. 어떻게든 여행 출발 전까지는 좋아지기를 바랐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민이 상태는 더 나빠만 졌다. 가래 기침이 심해졌고, 열도 해열제로 간신히 잡혔다. 다시 병원 방문. 폐사진이 좋지 않았다. 처음 찍었던 것보다 조금 더 안개가 낀 상태였다. 의사는 입원치료를 권유했다. 일단 남편과 대화 후 내일 입원 여부를 말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뒤면 여행출발이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소아과를 한번 더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서도 입원 치료를 권유한다면 여행은 취소다. 고민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조금 더 큰 소아과로 향했다. 진료가 끝나고 의사 소견은 4일 치 약처방이 끝이었다.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알레르기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열도 더 이상 나지 않았고, 아침저녁으로 기침을 하는 것 말고는 밥도 잘 먹고 잘 놀았다.
새벽 세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배 타고 떠나는 여행이라. 부산국제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네시 반 우리는 집을 나섰다. 새벽의 고요는 늘 대범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태양의 붉은빛을 토해 낼 것 만 같은 고요함에 압도당하는 나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의 하루는 일찍이 일어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터미널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일찍 히 떠나는 사람들, 돌아오는 사람들이 교차한다. 떠남과 도착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곳 터미널에는 사람 냄새로 가득했다. 설렘과 아쉬움이 텅 빈 공간을 채운다.
배가 고파 식당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한 우리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든든히 먹어야 했다. 여행도 식후경. 집에서는 아침부터 먹지 않을 라면을 주문했다. 밖에서는 자유롭다.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고, 보고 싶은 거 마음대로 보기 위한 여행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터미널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른 시간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니. 남녀노소 모두가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안고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발권 카운터 문이 하나둘 열리고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탑승 준비를 했다.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여행사 팻말이 곳곳에 있다. 사람들은 가이드 설명을 듣기 위해 곳곳에 모여 있었다.
발권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떠나고자 하는 여행지는 대마도다. 대마도는 제주도의 면적 반보다 적고, 울릉도보다는 10배 정도 크다. 부산에서는 49.5km, 후쿠오카에서는 132km로 한국과 훨씬 가깝다. 맑은 날에는 한국 전망대에서 부산이 보이기도 한다. 대마도는 인공해협을 파기 전까지는 하나의 섬이었다. 이후 2개의 섬으로 나뉘어 만관교로 연결되며 히타카츠항이 있는 상대마도, 이즈하라항이 하대마대로 나뉜다. 기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덜 춥다. 대마도는 규슈 지역과 함께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해 여름과 가을에 태풍이 잦은 편이다. 선박 운항은 파도의 높이와 바람의 세기에 따라 결정되니 출발 전 미리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대마도 본섬 주변에는 유인도 5개를 포함한 10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새벽에 떠나 오후에 도착하는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한 여행지이기도 하다. 해외여행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니. 파도가 좋은 날은 한 시간이 반정도면 히타카츠항에 도착할 수 있다니. 가깝고도 먼 나라 대마도이다.
배 타고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라 기대반 걱정반이다. 멀미가 심한 아들 민이가 걱정되기도 한다. 기침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걱정은 걱정이다. 혹여나 몸이 더 안 좋아지면 어쩌나. 무리하게 여행을 강행한 것은 아닌지. 배에 승선하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금 와 후회한들 어쩌겠냐만은 후회는 후회니깐. 생각을 멈출 수 없으니. 배안은 만실이다. 대마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다니. 무엇을 보고자 사람들은 대마도로 향하고 있는 건가.
나는 지금 대마도로 향한다.
이번 여행은 쉼이다. 잠시 쉼을 위해 한적 한 시골마을 대마도를 선택했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해외 여행지이지만 단 한 번 가보지 못했던 곳이다. 볼거리 먹거리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라 생각했다. 작고 작은 시골마을에서 무엇을 보고 먹고 느끼겠는가.
문득 대마도에 가고 싶었다. 고요 속에 머문 대마도 풍광을 담고 싶었다. 소박하지만 깊은 그들의 삶에 스며들고 싶었다. 촘촘히 박힌 시간들에 틈을 내기 위해. 나는. 우리는 대마도로 향했다.
울렁대는 배는 갈수록 심해 졌다. 아들 민이는 두 눈을 꼭 감는다. 잠이 들면 멀미는 잦아들 거다. 앞에서 위생봉투를 꺼내 든 승객. 멀미를 참지 못하고 뱉어 내는 사람들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민이가 걱정이다. 민이 눈이 떨린다. 아직 잠이 들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찡그린 눈을 보며 알았다. 위생봉투를 꺼내는 민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멀미에 민이는 새벽에 먹었던 라면을 모두 봉투에 쏟아 냈다. 배의 흔들림은 점점 더 심해졌다. 곳곳에 멀미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앞 쪽 좌석에 앉았던 사람들이 뒤쪽으로 향한다. 멀미는 선박 앞쪽이 심하다. 선실 직원은 사람들을 선박 뒤쪽으로 모은다. 모두들 멀미가 심한 사람들이다. 울렁거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선실 창 밖으로 비치는 바다는 왜 이리도 이쁜가. 선실 안은 냄새와 소리로 소란스럽다. 빨리 도착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민이는 다시 눈을 감는다. 더 이상 토해낼 것이 없다. 곳곳에서 들리는 멀미 소리에 민이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히타카츠항에 도착하는 것 말고는.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곧 히타카츠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모두가 듣고 싶어 했던 문장이었다.
"우리 배는 곧 히타카츠항에 도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