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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Oct 19. 2024

돌담과 사람들

고즈넉한 거리를 걷다 보면 만나는 돌담들이 있다. 커다란 돌들 틈새에 작은 돌들이 채워져 있다. 아무리 크고 힘이 센 돌이더라도 작은 돌들이 틈을 메꾸지 않으면 힘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크고 작은 것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제주도를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돌담을 이즈하라 골목길에서 자주 만난다. 일본의 전통가옥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진 집이다.  대마도는 섬이라 바람이 강하고 90% 이상이 산이여서 불이 나면 불길을 잠재우기 어렵다. 크고 작은 돌담이 지켜 내고자 했던 것은 돌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불에서부터, 바람에서부터 돌담은 그들을 지켜내고자 했다.


이즈하라 거리에는 무사가옥 거리가 있다. 미야타니 지구의 돌담 안에서는 사람 목숨을 향해 겨누던 화약을 제조하던 곳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화약고 역시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돌담이 지켜 낸 사람들은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친구를, 연인을, 평화로운 나라를 무차별하게 밞고 지나갔다. 촘촘하게 쌓인 돌담의 우직함이 멋져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허름한 돌담이었더라면. 돌담 안 사람들을 지켜내지 않았더라면 아픈 역사가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그랬을지도. 

쓰시마 번주들은 조선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았다. 소 가문의 20대 당주였던 소 요시토시는 규슈를 정벌하러 온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해 쓰시마번의 초대번주가 되어 임진왜란에 출정하지만 무역 실리를 위해 조선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제2대 번주인 소 요시나리는 조선과의 거래를 원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에 따라 조선과 협상하지만 조선은 왕릉 훼손 범인 송환, 포로 송환, 막부의 국서 제출 등을 요구한다. 이에 소 요시나리는 가짜 범인을 만들고 가짜 국서를 만들게 되는데, 이를 가산이었던 야니가와 시게오키가 폭로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무역은 쓰시마 번에 일임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에 소 요시나리는 무죄, 야나가와 시게오키는 하극상의 책임을 물어 유배시킨다. 

제3대 번주인 소 요시자네는 일본 최초의 초등학교 개설을 비롯해 조선 무역 확대, 조세 개혁, 무사들의 봉급 제도 개혁, 신문 발행등 각종 개혁을 단행하나 반대에 부딪혀 권좌에서 물러나지만 죽기 전까지 실정에 간여하는 등 지배력을 유지했다. 소 가문은 한국과 역사적 현실과 얽혀 있는 일본의 보기 드문 가문이다. 





일본에는 다양한 성씨가 있다. 친족이 아닌 한 성씨가 같은 경우가 상당히 드물다고 한다. 일본은 서양에서 처럼 성씨만으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유독 특정 성씨가 많이 분포하는 지역이 아닌 이상 모르는 남인데 같은 반이나 같은 직장에 같은 성씨가 있다면 굉장히 특이한 시선을 받는다고 한다. 대게 일본에서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성씨를 부르는 게 일반적인데 이 경우에는 성보다는 이름을 불러서 구분한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성인 '사토'는 100만여 명으로 일본 인구의 1%남짓에 불과하다. 


과거 사무라이나 귀족들의 특권이 성씨를 가지는 것이었는데, 메이지 유신에 이르러 평민들도 성씨를 갖게 되었다. 한평생 성씨 없이 살던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성씨를 만들었다. 산 아래서 살던 사람들은 야마시타山下)의 유래가 되었으며, 밭 한가운데에 살던 사람들은 다나카(田中)의 유래가 됐다.


대마도에서 소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귀족의 삶을 살았을 거다. 예나 지금이나 귀족들은 프리패스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대마도를 지배했던 소 가문은 얼마나 많은 재력과 권력을 움켜쥐고 살았을까. 사람의 욕심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높이,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니깐. 


돌담의 소박함 이면에 숨겨진 것들이 아름다운 것들만이 존재하지는 않았을 거다. 돌담 안 사람들은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었고 그곳을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성조차 없는 사람들은 성 밖에서 분주하게 살아가야 했고, 그 분주함의 대가는 궁핍과 배고픔이 자주 드나들었을 거다. 돌담은 어쩌면 하루의 고단함을 지켜내 주고 싶었을지 도 모른다. 권력과 부를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내던 사람들을 위해 그곳에 서있고 싶었을지도.

 

팔월의 햇살이 뜨겁다. 돌담은 묵묵히 햇살을 받아 내고 있다. 돌담 안이 고요하다. 골목길에는 여행객들의 소리만이 가득하다. 앞서 가던 가이드가 어느 단체 여행객들에게 침묵을 권한다. 돌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여행객들의 발이 오간다. 말들이 오간다. 쉬고 싶은 사람에게 소음은 곤욕일 거다. 고요한 거리를 침묵하며 걷는다. 걷다가 마주하는 돌담 그늘에서 숨을 고르다 다시 걷는다. 돌담 키만큼 길게 늘어선 그늘이 반갑다. 팔월의 태양은 너무 뜨겁다. 안을 지키던 돌담이 밖을 걷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어 준다. 여행객들이 옹기종기 그늘 안에서 땀을 식힌다.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는 역부족이다. 허나 잠깐의 휴식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힘을 내어준다. 사람들은 앞을 향해 걷는다. 우리도 천천히 걸었다. 


1528년 가문이 쓰시마 번주가 되기 전, 가문의 9대 당주였던 사다모리가 지은 가네이시 가옥이 있던 곳을 향해 걷는다. 여행객들 필수 여행지기기도 한 쓰시마 번주의 거성중 하나였던 가네이성이다. 정원과 성벽 일부가 남아 있는 이곳에는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가 있다. 사람들은 돌담을 넘는다. 아픈 역사의 기록이 있는 이곳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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