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하라 하치만구 신사는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오가며 한 번쯤은 들르는 곳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장소는 아니다. 이즈하라 하치만구는 삼한 정벌등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과 연관되어 자주 거론되는 진구 황후라는 전설 속 인물과 관련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삼한 정벌 후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진구 황후가 대마도에 들렸는데 이즈하라 하치만구 신사 뒤쪽에 있는 시미즈산에서 신령한 기운을 느꼈다고 한다.
신사의 '하치'란 일본어로 숫자 여덟을 의미하고, '하타'란 신이 내려오는 강림처의 깃발을 의미한다. 외적의 칩입으로부터 대마도를 지키위해 이 신사를 지었다는 이야기 전해져 내려온다.
이즈하라의 하치만구 신사는 진구 황후가 직접 세운 신사라고 하여 일본인들이 더욱 각별하게 모시고 있으며, 다른 지역의 하치만구 신사와 구별하기 위하여 ‘이즈하라 하치만구 신사’라고 한다.
두 개의 도리이가 있다. 왼쪽은 천신(텐진) 신사이고, 오른쪽은 하치만구(팔번궁) 신사다. 도리이는 인간세계와 신의 세계 경계를 구분 짓는 통로이다. 일본 여행 중 크고 작은 도리이를 자주 만난다. 일본에 신사는 약 30만이 넘는 신사가 있다고 한다. 모시는 신에 따라 기도의 강도가 달라진다. 신사에 방문한 사람들이 걸어 놓은 소원들을 보면 그 신의 능력을 알 수 있다. 관광객이 적어 놓은 소원 글들을 보면 가지각색이다. 건강, 사랑, 결혼, 출산, 행복, 돈 등 소원의 종류가 다양하다. 일본인들이 적어 놓은 단어는 간결하다. 문장이라고 말할 수 없는 단어가 고작이다. '합격'이라는 단어가 통일되어 있다. 물론 한자로 적혀있다. 여행객들이 한자로 적어 놓았겠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도 없다고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안다. 이 글자가 일본인의 한자인지, 여행객의 한자인지 말이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자국의 언어로 소원을 적는다.
글자체가 다르고, 펜의 굵기와 색상이 달라도 쓰인 단어는 같다. '합격'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인다면 이곳은 합격을 염원하는 기도 힘이 더 강하다는 거다. 결혼과 돈에 대한 기도를 하고 싶다면 그 신들을 모시는 신사를 찾아야 기도가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기도는 믿는 사람의 영역이다.
모두가 침묵한다. 도리이를 건너 신의 세계로 들어간다. 괜히 마음이 경건해지는 건 뭘까. 사람 마음이 참으로 그렇다. 불과 돌문 하나를 건넜다고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나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앞서 온 여행객들도 침묵한다. 고즈넉한 풍경이 한국의 사찰을 연상하기도 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겉모습은 비슷할지라도 그 속 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선선하게 불어주는 바람이 좋다. 도리이 밖은 덥다. 그늘이 없어서. 도리이 안은 시원하다. 그늘이 있어 청량감을 더한다. 도리이를 사이에 두고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
깊은 침묵을 깨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일본인 듯하다. 팔번궁 신사를 향해 계단을 오른다. 관광객이 계단을 오르지 않는 이유는 출입금지다. 한국인은 이곳 신사에 들어갈 수 없다. 일본인에게 신사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관광객들에게 신사는 관광지였을 뿐이다. 그 틈에서 오해가 생겼고, 오해는 불신과 불쾌 혐오로 까지 번졌다. 대마도 곳곳에 한국인 출입을 반대하는 곳들이 있다. 소수이기는 하나 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한국인에게 친절하다. 몇몇의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래된 역사적 문제 일수도, 새롭게 생겨난 또 다른 문제 일수도 있다. 싫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좋은 것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는 좋은 것만 안고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고 하지 않는가. 하치만구 신사에 들어가지 못해서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다. 도리이 안으로 들어온 넓고 깊은 그늘만으로 충분했다.
사람들 시선이 계단을 오르는 일본인 남성에게 향한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두 손을 합장하고 잠시 기도를 한다. 몇 번의 기도가 끝나고 그는 신사안으로 사라졌다. 관광객에게 허락된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도리이를 밖으로 깊은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린다. 단체 여행객들의 목소리가 이곳으로 향한다. 여름 햇살이 자주 드나들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 땀을 연신 닦아내는 노부부의 모습도 보인다. 미리 준비해 온 양산을 쓴 여행객들은 그나마 평온해 보인다.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발걸음이 도리이를 향한다. 깊은 침묵은 사라졌다. 도리이를 건넜다. 우리는 인간 세계로 다시 들어갔다.
'아! 덥다. 햇살이 뜨겁다' 저절로 찌그러지는 인상을 펼 도리가 없다. 여름 대마도 여행은 양산이 필수다. 우양산이면 좋겠다. 뜨거운 햇살에 가끔 소나기를 쏟기도 하니깐.
민이가 내 뒤를 잘도 따라온다. 걱정했는데. 이제는 걱정을 내려놓아도 될 것만 같다. 민이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다. 쉬다가 걷다가 하는 우리의 여행속도가 잘 들어맞고 있는 듯하다.
이즈하라 하치만구 신사의 기억은 깊은 침묵이었다. 관광객을 향한 신사 관리인의 침묵, 고요한 풍경이 안내하는 침묵, 쉼을 얻고자 하는 여행객의 침묵이 그날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