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갖게 된 나의 방
생애 처음으로 내 방을 갖게 되었다. 그야말로 나만의 고유한 영역이다. 새로 이사 온 집은 방이 세 개인데, 작은 방 두 개는 각각 딸과 아들이, 가장 큰 방은 내가 사용한다. 전입신고를 하며 나는 세대주가 되었다.
30년 가까이 거주했던 집에서 아이 셋이 나고 자라는 동안, 큰 방은 공용의 장소였다. 나란히 누워 자고, 아픈 아이를 돌보거나, 좌식 탁자를 놓고 한글을 가르치던 공간. 가족들의 물건과 내 물건이 뒤섞여 있던 공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주방에 있는 식탁 앞에 앉았다. 색실을 늘어놓고 십자수를 놓기도 했고,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자유 시간은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이 끝나는 늦은 밤이나 새벽에 이루어졌다. 크고 작은 방 세 개와 거실로 이루어진 집에서 아이들에게 방을 내주고 나면 개방된 공간만 남는다. 엄마에게까지 네 개의 벽으로 가려진 공간이 확보되는 것은 쉽지 않다.
포털에서 습관적으로 옥탑방이나 반지하 원룸 매물을 검색하며 일 년이면 월세가 얼마일지 계산하곤 했다. 매달 30여만 원쯤 감당해서라도 아무도 모르는 장소를 갖고 싶었다. 화를 삭이고 슬픔을 가라앉히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쏟아놓고 혼자 놀 수 있는 방. 문을 걸어 잠그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오직 내 목소리만 들리는 공간. 간절하게 고독이 필요했다. 내게는 편히 울 수 있는 한 뼘의 자리도 없었다. 그럴 땐, 장롱의 문을 열고 상체를 밀어 넣었다. 두꺼운 겨울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삶에는 예측하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당혹스럽지만 지나고 보면 재미있기도 하다. 자녀들이 독립한 후에야 가능할까 싶었는데 갑자기 넓고 큰 방이 눈앞에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는 원 없이 울고 웃고, 춤을 출 수 있다. 타인과 조율할 일 없이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고 구매하기 버튼을 클릭, 망설이지 않고 클릭, 충동적으로 클릭. 오늘의 집과 쿠팡, 당근마켓으로 구매한 물건들이 매일 쌓였다. 처음 갖게 된 내 공간을 꾸미는 일이 즐거웠다. 정리가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친구들에게 얼른 보여주고 싶어 성급하게 초대했다.
이사하기 위해 짐 정리와 버리기를 하며 체중이 8kg이나 빠질 정도로 힘들었기에 새집에서는 단출하게 살리라 다짐했지만, 사람이 생활하는 데는 왜 이렇게 많은 물건이 있어야 할까. 겨울과 여름옷, 간절기에 입을 옷이 필요했고, 그 옷을 보관할 옷걸이와 수납장과 행거가 없으니 불편했다. 행거를 가릴 커튼이 필요했다. 손톱깎이와 전기모기채가 있어야 했다.
마켓비에서 조립 전 상태의 그릇장을 사서 설명서를 보며 완성했을 땐 짜릿한 성취감도 느꼈다. 당근마켓을 통해 장만한 서랍장은 방문을 열면 바로 눈에 띈다. 운반을 고민하자 판매자가 직접 가져다주겠다 해서 둘이 앞뒤를 들어 옮겼다. 친구가 와서 보더니 짙은 네이비 컬러의 서랍장이 예쁘다며 싸게 잘 샀다고 했다. 책상은 이사 선물로 받았다. 서랍이 2개 달린 원목 책상이다. 이것도 아주 마음에 든다. 30년 만에 갖게 된 책상이라, 이 앞에 앉아 뭐든 해낼 것 같은 기분이다.
이미 읽은 책은 대부분 처분했지만, 같이 있고 싶은 책들은 챙겨 책상 옆 좁은 책꽂이에 두었다. 황정은, 이주란, 아니 에르노, 도리스 레싱의 소설이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그들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경탄한다. 때로는 한 권을 꺼내 아무 데나 펼쳐 한 페이지를 읽거나 냄새를 맡고 책등을 쓰다듬기도 한다.
처음 며칠은 뒤척였지만, 이제 푹 잔다. 전에는 비슷한 유형의 불쾌한 꿈을 자주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문의 안쪽이나 바깥쪽에 있다. 성별을 알 수 없는 흐릿한 형상의 상대는 문을 열려고 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문을 잠그기 위해 애쓴다. 또는 집으로 들어오려고 문을 연 순간, 거실에 무리 지어 앉아 있는, 모르는 사람을 보고 공포를 느낀다. 분명히 몇 번이고 문이 잠겼나 확인했는데 저들은 어떻게 들어왔지. 내 비명에 놀라 잠을 깼다. 그럴 때마다 힘을 준 어깨가 뻐근했다.
꿈속에서의 공포는 현실의 일상까지 압도했다. 이사를 오기 전, 나는 문단속과 가스 단속을 과할 만큼 했다. 차를 타고 한참 가다가 문단속을 허술하게 한 것 같아 되돌아오기도 했다. 며칠씩 집을 비울 때면 정도가 더 심해서 안절부절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냄비가 새까맣게 타고 있고,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고, 도둑이 들어와서 아이들의 돌 반지까지 싹 다 훔쳐 가는 구체적이면서 불길한 상상이 머리에 박힌 듯 떠나지 않았다. 불안이 많은 내게 여러 버전의 불행이나 불운과 맞닥뜨리는 상상을 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다.
놀랍게도 요즘 강박과 불안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문단속을 위해 자다가 일어나거나 외출했다가 되돌아오는 일은 없다. 모르는 사람들이 내 집에 함부로 들어오는 섬뜩한 꿈도 꾸지 않는다. 내 집, 내 방에서 이제 안전하다.
흰 벽지로 도배한 방에 예쁜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 향초를 사고, 바람이 드나드는 곳에 청아한 소리를 내는 풍경을 달았다. 라디오를 늦은 밤까지 계속 틀어 놓고 생방송 중에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볼륨을 크게 올렸다.
당근마켓에서 ‘살려주세요.’라는 나눔 글을 보고 데려온 식물도 생겼다. 키우고 있는 식물이 주말이 지나고 나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 같으니 데려가서 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제가 살리고 싶어요, 라고 신청 글을 보냈고 가까이에 사는 그에게 가서 식물을 받아왔다. 과연 식물은 곧 죽을 듯이 무르고 시들었다. 누렇게 마른 잎들을 떼어내고 엉킨 뿌리를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새 화분과 새 흙에 식물을 옮겨심어 오전에 볕이 드는 창가에 두었다. 하루를 버티고 이틀을 버티던 식물은 연둣빛 잎을 계속 내며 크고 있다. 본인 대신 데려가서 살려달라던 이는 한 번쯤 식물의 안부가 궁금할까. 여기 보세요. 지금 내 방 창가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내가 살렸어요. 이렇게 안부를 전해줄까.
너무 큰 것이 아닌가 싶던 책상 위에 물건이 쌓이기 시작했다. 책상에 유화물감이나 오일파스텔을 늘어놓고 그림을 그렸다. 이젤과 아크릴물감도 사고 싶어 중고 사이트를 계속 기웃거렸다. 노트북을 하려면 자질구레한 것들을 한쪽으로 쓱 밀어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이사를 하고 몇 달간…… 나는 뭐랄까, 과도한 흥분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갖게 된 방을 필사적으로 채우고 있었다. 쉼을 위해 떠났던 후쿠오카에서 가장 많이 갔던 장소는 어처구니없게도 다이소와 돈키호테였다. 고민 없이 작고 귀엽고 예쁜 것들을 마구 쓸어 담았다. 접시와 그릇과 젓가락, 쟁반, 접착 시트지, 우산까지. 캐리어에 더는 쑤셔 넣을 수가 없어 가방을 싸다 말고, 다이소로 달려가 대용량 장바구니를 샀다.
처음에 단출했던 방의 상태는 이제 엉망이다. 어수선하게 늘어놓은 잡동사니가 눈에 들어오며 한숨이 나왔다.
애초에 나는 2년을 작정하고 이사를 했다. 상황에 따라 계약을 연장할 수도 있지만, 4년은 넘기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골목을 산책하거나 다른 동네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다음에 살고 싶은 집에 대해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부동산에 써 붙인 매물을 훑어보기도 했다. 궁금했던 동네와 집에 2년 살기를 몇 번 더 해도 괜찮겠다 싶던 때였다.
그러려면 지금 처치 곤란한 짐은 더는 들이지 말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화분 같은 것, 앨리스 달튼의 그림을 끼운 대형액자 같은 것, 2년 안에 소비하기 어려운 대용량 생필품 같은 것. 어쩌자고 캔버스는 열 개나 샀을까. 그걸 언제 다 그리고 어디에 두겠다고.
집이 아니라 여행지의 펜션에 머무는 것 같다던 딸에게 우린 지금 2년 살이 중이야, 라고 큰소리쳤는데. 난 또 평생 여기 머물 것처럼 물건을 채우고, 그것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거다. 생각해 보니 딸에게 들키면 민망할 것 같아 이미 있는데 또 산 이런저런 것들을 안 보이는 데에 감추던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이러다간 또다시 물건들을 늘어놓고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고심해야 하겠지. 집에 있는 모든 것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무기력이 찾아왔다. 모든 것을 놓고 12시간 이상 잠을 잤다. 낮잠을 세 시간 자고도 저녁이면 졸음이 쏟아져서 9시가 되기도 전에 불을 껐다. 일어나서 무언가를 할 힘이 없었다. 양치하러 화장실까지 몇 발짝 걸어갈 힘이 없었다. 먹을거리를 사러 마트에 가면 진열대 앞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바나나 한 송이가 무거워서 터벅터벅 걸었다. 짧은 외출이 힘에 겨워 곧바로 침대 위에 쓰러져 몇 시간이고 잤다.
어느 정도였냐면, 부모님 집에 전 몇 가지를 만들어 갈 일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힘든 거다. 일단 장보기부터 버거웠다. 전을 만들려면 달걀과 버섯과 쪽파, 부침가루 등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마트에 가서 딱 버섯 한 팩만 사 오는 식이다. 그리고 누웠다가 나가서 호박을 하나 사 오는데 집에 와서야 밀가루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채는 거다. 마음을 다쳐가며 비우기를 했던 나는 그 허전함을 물건들로 다시 채우느라 남아 있던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그러나 나는 힘이 세다. 태생부터 힘이 장사였던 것은 아니고, 전투를 거듭하며 힘이 세진 것. 그런 나를 일컬어 전사 같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전사인 내 모습을 상상하며 그 별명이 꽤 마음에 들기도 했는데.
긴 잠을 자고 내 안의 힘이 조금씩 생겨난 후에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바깥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환했다. 그 길을 다시 걸었다. 다리와 마음에 다시 단단한 근육이 붙도록 땅을 딛었다.
아침과 저녁 약을 잘 챙기고, 요가를 하며 차츰 기력을 찾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온다. 한동안 내게 조기 치매가 왔나 의심했을 만큼, 기억력과 집중력이 심각하게 떨어졌었다. 뭔가를 결정하는 게 어려워 당혹스러웠다. 용기를 내어 싸우고, 드디어 내 방이 생겼는데 이 모든 일들이 기억 속에서 아득해지면 얼마나 억울할까. 최근에 빌려온 앤드루 포트의 신간을 이틀 만에 완독했으니, 다행히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나 보다.
오전이면 선 캐처를 통과한 빛이 천장에 흩어진다.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알록달록한 무늬의 빛이 조금씩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고요해진다. 짐을 쌓고 채우느라 분투했던 나를 이제는 이해한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손에 움켜쥔 채 허둥거리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30년 묵은 짐도 혼자 다 정리했는데, 2년 묵은 짐쯤이야 수월하게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광안리에서 시린 손을 녹여가며 주워 온 조개껍질, 묵호 여행길에 함께 했던 작은 스케치북, 딸에게 배워가며 만든 모루 인형, 어느새 늘어 스무 개나 되는 화분들. 모두 기분 좋은 기억을 머금고 있는 것들. 그러니 물건을 버리며 마음이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물건들과 잘 이별할 것이다.
얼마 전, 긴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에서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사고 싶은 욕망을 참은 것이 아니라,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엇으로라도 빈틈없이 채우고 싶던 마음의 허기가 괜찮아졌나 보다. 마침내 나는 여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비로소 내 방은 여행자의 방이 되었다.
덧붙이는 말:.이 에세이는 2024년 책나물출판사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된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에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