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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Nov 17. 2021

거리의 아이

콩트


시장 백반 한 그릇에 오십 원, 그 밥 한 그릇 먹으려면 구두 세 켤레를 닦아야 한다. 추운 날씨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구두를 닦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다. 그 보다 더 힘든 것은 구두를 닦으라고 발을 내밀어 줄 손님을 잡는 일이다. 하루 종일 구두 세 켤레 닦기도 수월한 일은 아니다. 세수도 변변히 하지 못한 얼굴에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까칠한 피부에 머리카락은 땟국물에 절어 영락없이 상거지 꼴이니 누가 구두를 닦아달라고 할 사람이 있겠는가! 아이는 그렇게 구두통을 짊어지고 거리를 배회하다 하루해가 저물면 가냘픈 몸을 뉘일 처소를 찾아 기웃거린다. 


너무 배가 고프면 또래 아이들과 함께 상점털이에 나선다. 상점 앞에 진열해 놓은 물건들을 납작 엎드려 접근해서 가만히 빼내 오는 것인데 운이 좋은 날은 정종 됫병 한 개라도 취하여 포장마차에 팔아넘기면 그날은 고픈 배를 채울 수가 있었다. 그것도 양심에 찔려 감히 어쩌지 못할 때가 많지만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아이들은 수차례 경험을 하였기에 별로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잘 해치우곤 했다. 그러나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그리 쉽사리 해치우지 못했고 그런 일을 경험한 날은 영 마음이 개운치가 않아서 괜스레 하늘을 쳐다보기가 민망했다.


운이 좋은 날에는 아침부터 손님들이 많아 여러 켤레의 구두를 닦을 수 있었고 그런 날에는 그런대로 고픈 배를 채울 수가 있어 좋았다. 그러나 그런 날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대부분의 날들에는 허기를 채우기가 힘겨웠다. 그런 날에는 피를 팔아야 했다. 그것도 운이 좋아 혈액병원에서 피를 구할 때라야 가능했다. 한번 채혈에 팔백 원, 그렇게 피를 뽑고 팔백 원이 손에 들어오는 날은 가슴 시리게 피를 뽑았다는 괴리감보다도 손에 쥔 돈으로 허기를 채우고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취해 잠시라도 괴로움을 다 잊을 수가 있었다. 


어떤 아이는 하루에도 몇 차례 피를 뽑았다. 그렇게 자주 피를 뽑다 보니 그 아이는 얼굴의 혈색도 희멀끔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그 아이는 쪼로록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맨날 피를 뽑느라 쪼로록거리는 아이는 그것에 대해 별반 마음에 부담도 없는 듯했다. 이런 아이에게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부모와 형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아득히 먼 남의 일이었고 오로지 그날의 삶을 어떻게 연명할 것인가를 걱정할 뿐이었다.


모두들 넉넉하게 사는 형편도 아닌 터라 이런 거리의 구두닦이 아이들의 배고픔쯤이야 눈에 들어올 턱이 없다. 이런 아이들이 도둑질을 배우고 거리의 부랑배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일이 없이 사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가정의 안락한 삶은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이는 눈발이 심하게 날리는 그날 구두 한 켤레도 닦지 못했다. 백반 한 그릇은커녕 십삼 원 하는 칼국수 한 그릇도 못 먹었다. 추운 날에 들어가 몸을 누일 잠자리도 없다. 그날은 낮에 장사하고 비워놓은 포장마차에 기어들어가 겨우 눈발을 피하며 위아래 이빨이 마주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와서 감기는 눈을 너무 추워 다 감지도 못하고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다 밤을 지새웠다. 꽁꽁 언 몸으로 역전 도깨비 시장의 상인들이 피운 새벽장터의 모닥불 곁으로 기어들었다. 밤새 얼었던 터라 모닥불 곁에 앉으니 금세 따뜻해지는 기운에 눈이 사르르 감긴다. 


감긴 눈에 하늘의 별도 들어오고 떠나왔던 엄마 품도 들어오고 형제들의 손도 만져진다. 그렇게 아득히 멀어졌던 것들이 손에 만져질 즈음 쿵쾅거리는 새벽장터의 소음들이 아이를 또다시 추운 거리로 내몰아간다. 내일이 없는 아이의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저물어갈까!


.............................


그 시절

모질게도 배가 고팠고

가난의 멍에를 지고 

휘어진 등허리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가슴 시리던

1960-1970년대가 칙칙한 색깔로 얼굴의 주름살에 박혀

잊히지 않는 추억을 잊은 듯 살아가며

또다시 그 처참한 지경에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지나간 날들의 한 귀퉁이를 들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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