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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Aug 04. 2017

추억은 사랑을 머금고

1.

고향 목포의 짭짤한 바다 냄새가 그립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아침부터 바닷가로 나가곤 했었는데, 간척을 해서 폐쇄된 염전은 그대로 놀이터였고, 물 고인 둠벙은 안성맞춤 수영장이었다. 개펄은 미끄럼틀도 되고 자연 머드팩은 기본이며 눈싸움하듯 즐거운 놀이기구였다. 발 하나가 빠알갛고 커다란 꽃게, 한 마리 잡으려면 개펄에 귀가 닿도록 겨드랑이까지 밀어 넣어야 손에 잡혔다. 한주먹이나 잡아 개펄에 덕지덕지 붙여서 꼼짝 못하게 해서 한쪽에 놔두었다가 집에 돌아올 때 가져가면 어머니가 맛있게 요리해 주시곤 했다.    


앞뒤가 꽉 막힌 채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강원도 원주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군 입대 후 몇 년간 바다 구경을 못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바다가 그리웠던지... 산에 올라가면 늘 혼자 흥얼거리며 "내 고향 남쪽 바다" 가곡을 불러대곤 했었다. 아직 여름의 시작인데도 후덥지근해져서 그런지 그 짭짤한 바다 냄새가 그립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노래 부르며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고향 바다를 끄집어내어 만지작거린다.    


개펄에 질펀하게 퍼질러 앉아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그리며 생각 없는 마음은 그대로 편안하다. 오손도손 모여 있는 보리밥 알갱이, 길게 길꼬리 내며 기어가는 고둥, 제 몸보다 크게 거품 뿜어 올리며 스멀거리는 게들, 시커먼 눈알 디룩거리며 노려보는 짱뚱어, 그 위로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 온통 개펄에 시커먼 몸뚱이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동무들은 마냥 즐겁다. 세상이사 바쁘건 말건 햇살에 내맡긴 채 개펄의 몸뚱이는 한가롭다. 콧등 간지럽히며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함으로 친구가 되었다.    


2.

가스레인지에 보리차를 끓이기 위해 주전자를 올려놓으면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석유곤로가 처음 부엌에 들어오던 날 이렇게 신기한 것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엌 아궁이에 등겨를 집어넣고 풍로를 저어가며 불을 때서 꽁보리밥을 짓던 시절이었던 때에 한번 밥을 지어내기가 여간 번거롭고 힘들었던 시절에 가만히 심지만 올려서 불을 피워 놓기만 하면 그렇게 손쉽게 밥이 지어졌던 까닭이다. 힘들여 먼지를 뒤집어써가면서 연기를 마셔가면서 밥을 짓지 않아도 되었으니 석유곤로 하나가 그처럼 고마울 수밖에. 그런 시절도 있었다며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님께서 웃으시며 너무나 좋은 세상에 살지만 요즘 사람들은 고마운 줄 모르고 산다고 이렇게 편한 세상에 살면서도 불평이 더 많다고 하신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나 보다. 힘들고 곤란할 때는 조금 더 나은 환경을 기대하지만 막상 좋은 환경이 되면 또 다른 편리함을 추구하며 불만을 토로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숱한 은혜의 일들이 날마다 우리를 에우시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으며 깨닫지도 못한 채 늘 불만과 불평 속에 주저앉아 있다. 뒤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는지가 새롭게 바라보일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헤아려 본다.    


3.

산모퉁이 햇살이 넘어가고 신작로에 땅거미 깔릴 즈음

땀범벅된 이마를 훔치면서 아이들은 놀이에 여념 없고

여기저기 굴뚝에 하얀 연기 모락모락 하늘에 올라간다.  

  

긴 그림자 좇으며 강아지들 이리저리 흙먼지 일으키고

개구쟁이 아이들 찾아대는 어머니들 목소리 낭랑하다.

어느 참에 떠오른 보름달이 동구 밖에 휘영청 조요하다.   

 

귀뚜라미 창밖에 귀뚤귀뚤 울어대고 갈바람 서늘쿠나.

아이들은 잠들어 새근대고 지켜보는 어미는 편안하다.

호롱불에 조을던 어미마저 잠이 들면 세상은 고요하다.    


4.

추석을 한 달 앞둔 보름달이 창문 너머 아파트 위로 떠올라 방긋 웃고 있다. 어린 시절 이렇게 보름달이 떠오른 날은 왠지 모를 설레임으로 신작로를 뛰댕기며 깍깍 소리를 질러댔었지. 박쥐들이 찍찍거리는 소리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다 간간히 떨어지는 별똥별을 향해 소원을 빌라치면 어느새 사라지고 만 별똥별, 아쉬운 마음에 총총한 두 눈을 말똥거리며 이곳저곳 별자리들을 더듬곤 했었지. 국자 모양 같은 북두칠성이 또렷하게 보였던 그 밤하늘 별들의 잔치에 넋을 잃고 한참을 고개가 아프도록 쳐다보았던 어린 시절 늦여름 밤, 진득한 땀이 어깻죽지 아래 끈적거리는데 시원한 갈바람 불어오니 그 어릴 적 밤하늘 달과 별들이 친구처럼 어울렸던 그때가 생각난다. 달과 별들은 여전한데 마음만 동심인 내 얼굴에는 세월이 잔주름으로 골 깊게 패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본다. 숨소리마저 잦아들 만큼 조용한 가운데 하늘의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가슴에 가지런히 모았던 그 두 손이 포개져 온다. 한 번도 손 모아 보지 않았다면 지금 가만히 손을 모아 보라. 가슴 위에 떨리는 심장이 요동치는 그 위에 손을 멈추고 귀 기울여 보라. 말 없는 소리가 모은 손 위에 떨림으로 부딪치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5.

심연에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열정도 무지갯빛을 찾아 길을 떠나고픈 마음도 솜털처럼 부드런 구름을 향해 날아오르고픈 마음도 그저 소년의 한낱 꿈일 뿐이었다. 그래도 꿈을 꾸고 있는 동안은 좋았더랬다. 그렇게 꾸는 꿈속에서만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다. 숱하게 진저리 치도록 받아내야 했던 온갖 꾸지람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온갖 요인들도 거긴 없었다. 그저 자유분방하게 하고 싶은 모든 것이 거기엔 있었다. 누구도 받아 주지 않는 어찌할 수 없어 주체 못하는 분노도 야비하리만치 설익어 얼버무리는 웃음도 지을 필요가 없었다.     

온몸이 흥건히 젖도록 꿈의 요동은 소년의 온몸을 흔들었다. 뒤척임을 계속하면서도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어도 그저 좋기만 했다. 그랬다 그것은 소년이 두고두고 빨아먹을 자양분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꿈은 새 힘을 얻게 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꿈을 생각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세상을 하직하는 아비의 마지막 꺼져가는 동공의 퀭한 모습에서도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 그저 바라만 보았을 뿐이다.    


오늘 밤 또다시 꿈에 드는 소년의 아련한 기억 속에 그 먼 날의 기억들이 또렷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하늘 몇 굽이를 훨훨 날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나 날았다. 그것은 그냥 두 팔만 벌리면 되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생시인지 그것은 별반 중요치 않았다. 지금 소년의 몸은 하늘을 향해 높이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6.

팽팽한 연줄 끝에 전해져 오는 연의 흔들림, 그 떨림 속에 훨훨 날아오르며 온몸은 건들면 툭 터져버릴 것만 같다. 아득히 멀어져 눈에 잘 보이지도 않지만 손끝에 전해져 오는 촉감만은 팽팽하다. 더 높이 더 멀리 하늘 저 끝을 향해 날아라. 파란 하늘 그 끝에 아득한 점이 되어 날아오른 연은 아침마다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 벼락을 맞을 일도 없고 형이나 동생과 싸우다 야단맞을 일도 없다. 배가 고파 허기진 배도 잊었고 헐거운 옷자락으로 밀려드는 추위도 아랑곳없다. 그저 손끝에 전해져 오는 팽팽한 긴장만 있을 뿐이다. 물지게 끙끙거리며 짊어진 가냘픈 어깻죽지도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도 연 자세 잡은 손을 멈추지 못한다. 하늘 쳐다보며 뜀박질하는 아이는 어느새 연과 하나 되었다.    


7.

굴뚝에 밥 짓는 연기 모락모락 올라가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두부장수 절렁거리는 소리 안개 뿌옇던 솔갯지에 나무 한 뭇 머리에 이고 나~무~요~오~! 외치며 지나던 나무장수 소리 숨찬 소 거품 입에 물고 지나가던 소달구지 삐그덕거리던 소리와 함께 쩔그렁거리며 들려오던 워낭소리 새벽 선잠이 깨면 들려오던 그 소리들 이젠 들을 수 없는 그 옛날의 소리들 아스라한 그 소리들 들려오는 것 같아 선잠 깨어 뒤척이며 귀 기울이는 아침 뿌우연 안개 자욱한 언덕 너머로 긴 그림자 드리우며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아 와락 반가움에 가슴이 설레인다.    


8.

눈보라는 없었지만 북풍한설에 옷깃을 여민 하루였다. 헐거운 옷만으로는 다 가릴 수가 없어서 살갗이 푸르뎅뎅 얼어붙고 떨리는 무릎을 곧추세워 하늘을 향하여 엎드리기도 버거웠다. 그래도 마음은 하늘을 향하였기로 늦은 밤 하루를 마친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다. 나목에 흩뿌려지는 달빛마저 시리디 시리게 가슴을 저며 오는 이 시간 영혼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여전히 침묵하시는 것으로 응답 없는 하늘을 향해 빈손을 모듬는 마음만 구슬픈 노래로 가득하다.     


차가운 가슴에 따순 빛으로 찾아주는 것은 검푸른 하늘에 초롱히 뜬 별들이다. 별들은 삭막한 세상의 어둠을 밝히며 여느 때처럼 변하지 않는 빛으로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지는 않을지라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세상을 지키는 빛으로 가슴마다 소망의 불씨를 일으키며 빛나고 있다. 별들이 노래하듯이 달빛이 흐느끼듯이 고단한 영혼 또한 하늘을 우러러 갈망하는 노래를 쉴 수가 없다. 마른 가지를 흔드는 바람이 함께 울어주며 윙윙거리고 있어 그나마 외로움은 덜하다.     


동토를 비집고 일어나려고 숨죽여 기다리는 씨앗들의 열망과도 같이 시린 가슴에 소망의 노래는 식을 줄 모른다.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한 겹씩 늘어나는 주름살에도 삭지 않는 열정으로 하늘을 우러를 수 있는 것은 다만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 때문이고 은혜 때문이다. 아무리 오늘이 슬퍼도 내일은 기쁨일 것이라는 소망 때문이다. 오늘보다는 내일 주님이 더 가까이 임하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여전히 두 발은 땅을 딛고 서 있지만 두 눈은 더욱 초롱초롱하여 하늘을 향하고 있다. 이 밤도 주님이 내 곁에서 나를 보듬고 있다. 하여 그저 가슴은 벅차고 감사할 뿐이다. 자고 일어나는 새날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일 것이기에 이 밤도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9.

구멍 숭숭 뚫려 헐거워질 대로 헐거워진 가슴 모다 드러내 생살 드러내 놓을라치면 어느새 달려드는 온갖 잡새들이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마냥 쪼아대는 통에 견딜 재간이 없다. 그냥 숭숭 뚫린 구멍 조용히 감싸 안고 헐거운 채로 숨죽여 내심과 다른 외양으로 온갖 요란한 너스레를 떨어보는데 그것이 본시 볼썽사나운 가식인지라 금새 본심이 들통나 꾸며댈 밑천도 바닥을 드러내 저 깊은 가슴 속살 다 보이니 좋은 날 쾌지나 칭칭나네 노랫가락 흥얼임 모다 부질없다.    


오갈 데 없는 것이 새삼스런 것도 아니고 그게 본상이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새에서 흥청이다 잠시 잊었던 게다. 아무리 퍼 담으려 기를 써도 채워질 턱이 없는 숭숭한 가슴, 땅의 것으로 퍼 담으려는 것이 애시당초 가당키나 하던가. 오호라 어리석기는 위로부터 오는 것을 그리도 몰랐던가. 허한 가슴 채우고 달래려고 얼마나 두리번거려 살폈는고.    


크막한 하늘 다 채울 것도 없이 한 조각이면 가득할 터이니 구멍 숭숭 뚫려 헐거워진 가슴 앞에 모은 두 손이면 충분타 하늘이 내려와 손에 얹히고 가슴에 휘돌아 들어와 앉는다. 소란스레 부산한 움직임도 갈앉고 묵묵하게 우러른 하늘 가슴으로 부르는 하늘의 노래에 침묵하던 땅이 깨어난다 하늘과 맞닿은 땅의 노래는 쾌지나 칭칭 쾌지나 칭칭나네.    


10.

아 따땃하다. 시골 논둑에 쌓아둔 낟가리에 기대고 잔뜩 웅크리던 어깨를 펴며 기지개를 켠다 간간히 불오는 바람이 아직은 쌀쌀하지만 햇살 내리쬐는 바람막이 담벼락 아래 앉았으면 허기진 뱃속까지 따시다 아롱아롱 올라오는 아지랑이 들녘에 넘실거리면 나물 캐는 아낙네들 손짓이 퍽이나 넉넉하다 퍼붓는 햇살도 따사롭고 생각 없이 기댄 낟가리도 정겨우며 아낙네 손짓도 넉넉하니 봄날이 가져다준 호사에 마음마저 넉넉하다 좀 있으면 훌훌 벗어던지고 냇가에 멱 감으러 뛰어들 날도 올 것이니 겨우내 얼었던 마음도 다 잊혀지리다. 친구야 따땃한 봄 마중하러 가자.  


11.

가까이 다가가면 어느새 저만치 멀어지고 손에 쥐었다 싶은데 금세 새어나가 빈손이다. 가깝고도 먼 당신의 자취 꿈길을 걷듯 뒤척이며 손 내밀며 허한 가슴에 환영처럼 당신을 끌안고 목이 메어 속울음으로 끙끙거리다 밤새 신열에 들떠 흥건히 젖은 몸.    


재재거리는 새소리와 기다란 빛으로 엄습하여 창문 타고 넘어 든 햇살에 부신 눈을 슬며시 떴다 감았다 깜빡거리는 아침, 가까이 다가가면 어느새 저만치 멀어지고 품에 안았다 싶은데 금세 허전한 가슴이다. 잊었다 말하는 것은 더욱 크막한 그리움, 밉다 도리질 치며 고개 돌려 앉는 것은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픈 열정.    


따순 봄날이 창가에 걸터앉은 아침, 당신 오시는 소리 들으러 길을 나서렵니다. 당신의 체취 느끼려 이리저리 쏘다녀 보렵니다. 당신의 따순 음성 귓가에 내려앉으리라 바라며 밤새 신열에 들떠 끙끙거리던 느낌 그대로 부신 햇살 가득한 아침을 길동무 삼아 나서렵니다. 먼발치서라도 불오는 바람결에라도 사람들 북적거리는 틈바구니에서라도 당신의 내어미는 손길을 당신의 그 따스한 숨소리를 연민에 가득한 당신의 눈빛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만질 수 있기를 바라며 당신의 품을 향하여 바람 가득한 마음으로 또다시 길을 나서는 햇살 가득한 봄날 아침.    


12.

소년의 뜀박질을 금세 따라잡을 만큼 아들을 뒤쫓는 어머니의 마음은 사랑이었습니다. 잘못을 했으믄 빌어야제 어째서 도망을 간다냐 그라믄 못써 이누마 혼내키며 타이르다 이내 가슴에 품으시고 뜨거운 눈물을 떨구는 어머니의 마음은 사랑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김치전 파전 부쳐서 내놓기 무섭게 낼름낼름 먹어치우는 자식들 벌름거리는 입을 바라보며 흐뭇해서 웃는 어머니의 마음은 사랑이었습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저녁이면 지쳐서 일찍 잠자리에 누울 만도 하지만 한밤중 아이들 잠든 머리맡에서 가만가만 웅얼거리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사랑이었습니다.    


13.

이리저리 흔들리며 휘둘린 채로 상흔 가득한 가슴 부여잡고 소리 없는 부르짖음의 몸짓들이 여기저기 손짓하며 부른다. 가만가만 흔들리는 춤사위가 따뜻한 가슴을 부른다. 목메이게 처연한 몸짓으로 위로의 손길을 기다린다. 메마른 동공에 서린 간절함으로.    


오월의 부신 햇살 아래 푸르디푸른 풀밭에 누운 채로 푸른빛이 칼날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맨몸으로 받으며 긴 호흡으로 하늘을 품는다.     


시리디 시린 가슴에 내리 꽂힌 파아란 하늘이 소곤거린다. 등허리에 얹힌 무거운 짐 내려놓으라고 하나씩 둘씩 빠져나가는 한숨에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지며 마음은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 이파리들의 춤사위 그 한가운데 부유하는 몸짓으로 생의 아픔들이 노랫가락으로 흐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평안이라는 이름으로 천지사방에 잔잔한 흐름으로 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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