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언어, 24개월
요즘 우주는 손으로 크게 하트를 그리며 “사랑해!”를 외치는 재미에 빠졌다. 처음에는 가볍게(?) 가족들과 뽀로로를 사랑한다 외쳤다. 그런데 이제는 눈앞에 어떤 사물이든, 그 이름을 부르며 사랑해! 를 덧붙인다. 우주의 하루에 만나는 모든 것에 사랑 고백을 한달까.
그녀의 고백 중 나를 당황케 하는 몇몇도 있었다. “먼지 사랑해! ”, “그림자 사랑해! “, “거품 사랑해! ”, 와 같은 말들이었는데 도통 우주가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말들이 더러 있었다.
산책할 때의 일이다. 가는 길목에 울타리가 설치되어있었는데, 중간에 큰 무당거미 한 마리가 촘촘히 짜인 거미줄 위에 있었다. 우주가 거미를 보고 가리키며 “거미 사랑해.”라고 표현했는데 순간 “우주야, 엄마는 거미 무서워..!”라고 말해버렸다. 근데 내가 내뱉은 말이 우주의 사랑에 편견만 만들 것 같아 이내, “그런데 생각해보면 거미도 무서운 애가 아닐 수도 있겠다. 사실 엄마한테 딱히 나쁜 짓을 한 적도 없어. “라고 호다닥 덧붙였다.
단어는 대게 이미지를 함축한다. 단어의 이미지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누군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의 결과물이거나 각자의 아주 개인적인 경험의 결과물이다.
‘거미’는 나에게 전혀 해를 끼친 적이 없는 곤충이다. 우주가 거미를 사랑한다고 하자마자 내가 “무섭다.”라고 한 것은 개인적인 경험보다는 살아오며 주변인과 매체에서 보고 들은 학습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그런 이미지들을 학습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각각의 이름들이 갖는 일반적인 이미지에 대해 캐치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말을 빠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막상 우주의 거미 사랑 고백을 듣고 보니 거미가 너무 억울할 것 같은 거다. 다가가지도 않고 그저 제 집인 거미줄에 매달려 가만히 있는 자신을 무섭다 하다니. 날파리나 모기면 몰라도 사람들이 그리 생각한다면 어이가 없을 수도.
이미지는 나에게 모호하게 다가오는 단어 중 하나다. 어떤 때는 이미지가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미지와 먼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음 편히 이미지 속에 숨어있기도 하다가, 마음 졸이며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기도 한다. 어쨋든 이미지만으로 대상을 보는 것에는 그의 본질에 대한 왜곡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직 이름(단어)에 대한 이미지가 거의 없는 우주는 그래서 그림자를, 먼지를, 거미를 사랑한다고 했던 거다. 뭐든 겁 없이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축복이랄까. 우주 덕분에 내 편견이 하나씩 거둬지길 바라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