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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Jul 01. 2023

“로디 너를 얼마나 차쟜눈데!” :소외되지 않는 장난감

우주의 언어, 28개월

우주는 이모복을 타고났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가장 나이 많은 딸인 나는 집안에서 입시,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가장 먼저 경험했다. 큰 일들에 문을 연다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큰 응원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사건은 두말할 것 없이 우주의 탄생이었다. 이름마저 우주인 이 아이는, 신생아를 본 적이 없는 내 주위 다 큰 동생들에게 새 우주를 열어주었다. 처음에는 이제 막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신 작은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그 관심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이것은 의심할 수 없이 사랑이다.


이모들은 우주를 직접 만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오곤 했다. 물론 바쁜 우리 현대인인 이모들이 항상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오래 보지 못하더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인스타로 우주의 일상을 보기도 하고, 가끔 영상통화도 하니까. 우주가 걸음마를 시작하거나 어린이집 등원을 할 때에도 그리고 우주가 돌치레로 고생할 때나 코로나에 걸렸을 때에도, 그것이 대견해서이든 걱정돼서이든 이모들은 우주를 웃게 할 각종 선물을 보내주곤 했다.


우주가 28개월이 되었을 때, 이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을 적응해 가며 정말 자주 잔병치레를 했다. 나름 그녀가 겪은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아이도 힘들고, 엄마도 힘든 나날이었다. 하루는 우주와 병원을 갔다가 집에 들어오는데 현관 앞에 택배상자가 와있었다. 풀어보니 이모들이 보낸 공룡 젤리와 뽀로로 자석이었다. 하나하나 풀어보면서 아픈 우주가 얼마나 신나 했는지 잊을 수 없다. 특히 자석은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씩 뜯어서 김치 냉장고에 붙이기 시작했다. 들떠서 쫑알대던 이때 우주가 한 자석에 대고 말한 한 마디를 잊고 싶지 않아 수첩에 적어 두었다.


“아이고 로디야!

우주가 로디를 얼마나 차잤눈데에!

내가 도아줄께 조금만 기다려!”












‘로디’는 뽀로로에 나오는 한 캐릭터다. 극 중 똑똑한 여우 에디의 단짝인 로봇 고양이인데 나름 주인공 중 하나이긴 하지만 비중이 적은 아이다. 그래서인지 벌새인 ‘해리’ 그리고 용인 ‘통통이’와 함께 과자나 굿즈에 잘 포함되지 않는다. 뽀로로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로디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다. 뽀로로와 관련된 장난감이나 먹을 것을 사서 풀어보면 로디는 여간 찾기 힘든 캐릭터였다. 그런 로디가 우주는 안쓰러운지, “엄마 로디는 어디찌?”하며 찾곤 했다. 우주의 마음씀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어서 “글쎄, 아직 로디는 집에서 자고 있나보다~”라는 답을 준비했던 나다. 그런데 이모들이 보내준 자석에 그 로디가 있는 거다! 로디를 보고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우주는 로디가 그려진 자석을 한동안 김치 냉장고에 붙이지 않고 꼭 쥐고 있었다.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홉 살 즈음이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때 썼던 시들을 좋아해 주시는 어른들이 꽤 있었고 그들과의 희미한 기억들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나에게도 선명한 힘을 주고 있다. 물론 거대한 칭찬은 아니었을지라도 이 따뜻한 말들은 오늘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담임 선생님들은 내가 별 의도 없이 좋아서 쓴 표현들을 한 번씩 친구들에게 읽어주시곤 했다. 그래서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내가 직접 쓴 시를 읽는 시간만큼은 당당하게 일어나 큰 소리로 발표했었더랬다. 그래서 부끄럼 많은 어린 내가 나름 타인에게 다가간 용기 있는 경험 중 하나로 의미 있게 남아있다.


잊기 싫어서 계속 생각하며 붙잡는 기억들이 각자마다 있을 거다. 내겐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그렇다. 작은 스케치북에 색색깔 그림과 함께 시를 쓰는 게 어린 나의 취미 생활이었다. 글자를 사랑하는 외할아버지는 내가 쓴 글들도 빼놓지 않고 하나하나 꼼꼼히 읽으셨다. 얼마나 진심이셨냐면 유독 좋아하시는 부분은 소리를 내어 읽으셨고, 읽기를 마치시면 천장 쪽으로 오래 시선을 두셨다. 아마 문장을 마음속으로도 되뇌어보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 외할아버지는 내게 “이 부분을 봐봐, 어린아이의 눈으로는 이렇게 보이기도 하구나. 너는 시인이 되면 좋겠다.” 비슷한 말을 하셨는데, 그 말은 불분명해도 할아버지의 반달 웃음의 시선과 따뜻한 음성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왜인지 모르지만 외할아버지가 내 시를 읽고 기분이 좋아지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실이 있다.’라는 뜻을 지닌 내 이름은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외할아버지께서 해주신 그 말과 분위기는 내게 이름처럼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갑자기 내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이유는 어린아이들의 말과 글이 의도치 않게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다. 외할아버지가 내 시를 읽고 생각에 잠기신 것처럼 우주가 로디를 늘 찾고 챙기는 말을 하는 것도 나를 생각하게 했다. 사실 소외된 대상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보는 것은 우주의 본성 깊숙이 내재된 특성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같이 노는 이모 중 하나가 사라지면 찾으러 다녔고, 공룡 장난감에서 하나가 눈에 안 보이면 그 하나가 없다고 찾아달라 했다. 어린이집에서 사진을 보며 반친구들 이름을 부르면서도 사진에 없는 친구의 이름도 꼭 불러준다고 선생님께서 알림장에 적어주신 적도 있다. 나는 우주의 그 섬세함이 고맙다. 존재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이 그 존재를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아서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존재가 바로 ‘나’라는 걸 육아하면서 더욱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사실 타인을 한 번 더 생각하려는 우주의 성향은 우리 엄마로부터 내려왔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받으려고 주지 말아라. 좋은 마음을 쓰면서 주는 기쁨이 이미 받은 선물이다.’라고 말해왔고, 나는 그 말을 내 삶에도 적용시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친절을 베풀고 도움을 주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육아를 해보니 깨달았다. 그것도 내 내면의 힘이 단단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소외되지 말아야 할 것은 나 자신이다. 우주에게는 꼭 이것도 같이 알려주고 싶어서, 이제부터는 “우주가 로디를 찾아줬네. 로디를 찾아주다니 우주 멋지다!”라고 우주 존재의 멋짐을 한 번 더 말해줘야겠다. 우주가 커서 우주의 마음을 먼저 살펴보는 건강한 어른이 되기를, 그래서 소외되는 주변 사람들도 챙길 힘이 있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꼭 덧붙여야지. 그러면 엄마의 말이 주문처럼 날 그렇게 만들었듯, 나의 말이 우주를 그렇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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