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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Jun 08. 2023

“엄마, 이 파스타 진짜 맛업댜!” :나쁜 감정은 없지

우주의 언어, 26개월

아직 어리디 어려 우주의 이 특성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으나, 우주는 예쁘게 말하는 재주를 가졌다. 이 꼬마가 가끔씩 툭툭 내뱉는 말들이 내게 힘을 주기도 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게도 한다. 그런 우주의 능력 덕에 나는 자기주도이유식을 오래 할 수 있었다. 자기주도이유식이란 말 그대로 부모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아이가 직접 음식을 먹도록 하는 이유식법이다. 시도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기주도이유식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한다. 일단 한 번 시작하면 온 집안이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소근육 발달이 진행 중인 아이들이기에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것이 많고, 흘릴 때 절대 식탁에만 흘리는 운이란 발생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가만히 앉아서만 먹으란 보장도 없고 음식을 던지며 놀기도 한다. 그런 고난을 하루에 밥 3끼, 간식 2번을 반복하다 보면 정말 도를 닦는 심정이다.


그런 힘든 시기였지만 우주에게 소리 지르며 화를 낸 기억은 거의 없다. 물론 우주가 듣지 못하게 교육상 좋지 않은 말은 나지막이 읊조리거나 친구들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일은 상당히 많았다. 하하. 유난히 힘든 날에도 웬만하면 해탈해서 “우주 오늘 아주 창의적으로 먹게 작정했구나~”라고 장난을 섞어 말하거나 “엄마가 오늘은 치우는 게 버겁네.”하며 엄마도 힘들다는 말을 최대한 공격성 없이 모노톤으로 전하곤 했다. 내게 이런 멘붕의 사태가 매일 있는 것도 흔하지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감정 조절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신기했다.


내가 무림의 고수 도인이어서 짜증이 날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우주가 항상 따뜻하게 반응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반응이 비언어적이든, 언어적이든 말이다. 우주는 내가 이유식이나 유아식을 준비하며 요리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박수를 치곤 했다. 자기가 도와주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요리에 가담(?)한 적도 꽤나 있다. 완성된 밥을 먹을 때는 놀이를 하듯 어찌나 행복해하던지. 까르르 까르르 기분 좋은 아기 웃음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말을 할 줄 알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요리하는 엄마를 칭찬해 줬다.


“엄마 이거 너무너무 마시따!”

“이거 맛난 데 엄마도 먹어바!”하며


물론 기분이 좋지 않아 반찬을 던지거나 울며 떼쓴 날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날보다 춤을 추고 노래하며 신나게 먹는 날이 훨씬 많았고, 그 기억을 모아 모아 버거운 날도 버틸 수 있었다.












참 사람 마음이 이상한 게, 우주가 늘 해맑게 웃고, 따뜻한 말을 자주 하는 것도 한 편으로는 걱정거리가 되었다. 혹시 엄마의 기대 어린 반응 때문에 부정적이라 생각되는 감정 표현을 두려워하나? 내심 싫은데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상처받을까 봐 좋게 말해주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우주가 나의 야심 찬 파스타를 먹고 하는 신랄한 비평을 듣고 안도했다.


“엄마, 이 파스타 진짜 맛없댜!!“




어찌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컴플렉스라는 색안경을 끼고 우주를 지켜봤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부터였나 사회에서 ‘긍정의 힘’이 강조되곤 했다. 책을 읽어도 미디어를 봐도 그랬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1학년 때 특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라고 쓸 정도로 온갖 긍정과 선함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물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렸던 나의 경우에는 도가 지나쳐서 화를 내거나 짜증이 나거나 하는 감정을 무시하는 지경이었다. 그런 감정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 줄 말을 하는 것도 극도로 피했다. 소위 말해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진하게 배어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고 나의 모든 감정은 소중하다. 화와 두려움, 짜증 같은 감정도 나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리고 타인에게 나의 불편함을 전달하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다.’라는 사실들을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닫게 되었다. 깨달음을 행동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아직도 적응해나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우주가 혹시나 예전의 나처럼 착하기만 한 아이가 될까 봐 지레 겁이 났다. 그런데 그런 나의 걱정을 아는지 파스타가 맛이 하나도 없다고 보이콧을 한 거다. 보이콧을 당한 입장치고 기분이 퍽 좋았다.


물론 우주가 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은 결국은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주가 건강하게 타인의 바람들을 거스르고, 정중하지만 솔직하게 반대하고, 자신을 지키면서 우주 마음 가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3n살인 나에게도 어려운 것들이 작은 아이에게 쉬울 리 없다. 그러니 이것은 일생의 프로젝트이고, 엄마/아빠로서 옆에서 진심으로 응원하며 우주 마음에 건강한 씨앗을 심어줘야겠다 다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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