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아름다움과 시들지 않는 마음
튤립은 대파의 아우라로 우리 집 문을 열었다. 줄기에서 꽃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꽃이라기 보단 풀잎처럼 초록빛을 더 머금고 있었다. 나는 그 서툴고 투박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여성적이다 남성적이다 할 것 없는 그 젠더 뉴트럴함이 귀여웠다.
시간이 지나자 붉은빛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리즈 시절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싶었다. 싱그럽고 생명력이 넘쳤다. 보통 튤립을 꽃다발로 받는다면 바로 이 시기를 선물 받겠지. 민낯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부러웠다. 꽃봉오리가 아주 조금 열리기 시작하면서 꽃잎은 생동감 있고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튤립의 정체성이 가장 잘 보였다.
그 후 무심하게 튤립 앞을 지나가는 나날이 지속되다가 어느 날 저녁, 잎사귀가 얇고 투명해져 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꽃잎의 끝부분에 붉은색이 몰리고 그 밖의 부분은 더 연해진 것이다. 힘이 사라져 끝 부분이 동그랗게 바깥쪽으로 말려지기 시작했다. 전에 리즈 시절의 튤립을 봤을 때 '이 순간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했는데, 나는 탄탄함이 사라지고 힘이 없어진 튤립에 오히려 매료되었다.
힘이 없어져 결국 꽃봉오리에서 이탈해 떨어진 꽃잎들도 생겨났다. 그 전 날 읽으려고 올려둔 책에 꽃잎들이 내려앉았는데 책의 색깔과 어우러져 그 순간도 이쁜 거다.
나는 사실 책 취향이 뚜렷한 편이었다. 고전 소설이나 심리학, 철학 책을 읽는 게 좋았다. 심오함은 나를 생각하게 했고,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게 많았으니까. 에세이처럼 타인의 소소한 일상을 읽는 것은 사실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몇 달 전 엄마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았을 때에도 처음에는 집중도 잘 안되고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우주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읽어가는데, 너무 힐링인 거다. 잔잔하게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한 사람의 일상의 단상을 읽는 게 이렇게 행복하구나.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며 꽃잎을 모아 모아 보았다.
시간이 지나 몇 개의 잎은 떨어지고, 몇 개의 잎은 남았다. 어디에 있든 그렇게 모든 잎이 시들어갔다. 이제는 전혀 튤립 같지 않은데,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시적이다. 아름답게 나이를 든다는 것은 결국 시각의 문제일 것 같다. 어떤 순간에도 아름답게 보는 눈이 있기를 기도한다.
이제는 떨어진 잎들도 말라버렸다. 한 달 남짓되는 기간 동안 너를 보여 너무 행복했어. 고마워 튤립아.
오늘 나는 레고 꽃을 만들기 위해 새벽 6시에 눈이 떠져버렸다. 어제 우주랑 같이 만들기를 시도했으나 네 송이를 만들었을 무렵 우주가 말했다. "엄마 꽃 그만 만들어!" 그렇게 레고 꽃 만들기를 중단하고서도 계속 언제 만들지 생각뿐이었다. 생각의 힘은 꽤나 강한지 잠만보인 내가 오늘 새벽에 일어난 거다. 남편이 귀신인 줄 알고 놀랬다. 머쓱타드..
우주가 태어날 때, 우주는 정말 선물을 많이 받았다. 그 와중에 이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선물을 보내줬었다. 그리고 나에게 집이 생기자 친구는 또 내 선물을 잊지 않고 가져왔다. 이 레고 꽃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한 달 전인가 사고 싶어서 기웃거리다가 새 시작 준비로 바빠 잊어버린 거였다. 그래서 선물을 받자마자 친구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사는 건지 너무너무 신기했다.
식탁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우주 어린이집 가서 어때~?"라고 묻길래
"우주가"로 나도 모르게 말을 시작하려 하는데
"아니 우주 말고 언니 말이야~"라고 친구가 말하는 통에 울컥했다.
우주를 키우면서 그래도 나 스스로 소중한 것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세상 바쁘니 나를 제일 먼저 놓치고 있었나..? 싶었다. 그걸 챙겨주는 친구가 있어서 너무너무 고맙고 나도 그런 친구가 되어야지 또 다짐했다.
시들지 않는 얘를 매일매일 지나다니다 볼 때마다 '와 나 너무 소중하지!'라는 생각도 시들지 않게 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