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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미 Heyme Oct 22. 2021

[2] 숨이 부족하면 일단 살고 봐야 한다

<가끔은 잘 살았는데도 심란하지만,>

* 읽기에 앞서 : 나를 살린 <김희진 - 바보>라는 노래를 추천합니다. (라디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서 라이브 버전) https://music.youtube.com/watch?v=_IzY5f5Vc0Q&feature=share 


사람은 본디 타고난 기질이 있다. 나와 내 주변 사람이 이 기질을 가진 나를 존중하면 할수록 삶의 의미와 행복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활발히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의 감정적 교류가 풍부해야 하는, 예체능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참 아쉽게도 나도, 내 주변 사람도 나의 이 기질에 끈기 있게 주목하지 못했다. 부모 말을 잘 듣고, 대학에 잘 가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 - 그 무료한 가치들이 내 전부인 것 같았던 삶을 꽤 오래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랐겠지만(그래서 너무 슬프다), '원하는 것' 보다는 '해야 하는 것'이나 '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며 자라왔고, 사회인이 되는 초입에 그 선택의 관성은 또 작동했다. 나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지만 전공을 살려 꼬박꼬박 적당한 돈이 들어오는 직장에 취직을 했다.


처음 만져보는 돈은 참 커 보였다. 그러나 이내 그 기쁨의 크기보다는 무미건조한 업무들이 내 인생에 주는 불행이 더 크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어여쁘게 보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꿈꾸던 것들이 계속 수면 위로 떠올랐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이 들끓는 예술에 대한 마음을 채워나갈 창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다양한 기회를 엿보다 우연한 기회에 유명한 타투이스트로 성장하던 지인의 영향으로 타투이스트라는 사이드 잡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나는 정말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돈은 포기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돈도 벌고 노력 대비 빠르게 예술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게 타투이스트라는,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얄팍한 생각에서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관대하고 친절했던 지인이 감사하게도 들떠서 푸닥거리는 나에게 저렴한 가격에 여러 기술들을 알려주고, 장비를 사는 것도 함께 해 주었다. 원래 수준 높은 강의를 들을 때 실력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속에 휩싸인다. 뭐든 바로 할 수 있겠다는 자만심과 더불어 시작도 안 해 놓고 멋진 미래를 그리는 설레발이 버무려져서, 나는 또 차근히 밟아 나가야만 올 수 있는 먼 미래를 굉장히 가깝게 느끼고 있었다. 현실 이상으로 나를 기대하는 마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처럼 계속 부풀어 올랐다.


기다리던 타투이스트로서의 첫 타투 예약이 잡혔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전 날 저녁에 퇴근 후에 작업을 연습하러 갔다. 그날은 체력은 특히 없는데 욕심을 좀 많이 부렸던 날이었다. 회사에서는 며칠째 화장실도 잘 못 갈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드디어 데뷔라는 기대감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재료를 어깨에 둘러 매고 일하는 타투샵으로 향했다. 월세 계약을 맺은 곳은 대로변에 있는 오래된 벽돌 상가였는데, 돌아 돌아 계단을 올라가면 차가운 회색의 철제문이 나왔다. 아무도 없어서 불을 내가 켰다. 배가 고팠지만 식욕이 떨어지는 콤콤한 냄새를 맡으며 기기를 세팅하고 정신없이 연습에 들어갔다.


연습을 다 끝내고 나니 거의 11시가 다 되어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깜깜한 밤하늘에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당연히 우산은 없었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택시를 타야 했다. 그러나 날씨가 많이 궂어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어서 그런지 유달리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어깨에 매달린 가방이 나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차가운 빗물은 거슬리게 땅을 치고 종아리까지 토독거렸다. 어렵게 잡은 택시에 겨우 올라탔다. 그 짧은 사이에 젖은 몸을 달달 떨면서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 돌리려는 순간, 숨이 턱 막혀오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못 쉬고 있었다.


숨, 그거 어떻게 쉬는 거였지?


패닉에 빠져서 당황하는 시간이 꽤 흘렀다. 물방울이 맺혀 사선으로 흐르는 창밖으로 네온사인이 반사되었다. 정말 죽을 것 같아. 이대로는 정말 숨 못 쉬고 죽을 거 같아. 참다 참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기사님한테라도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터트려 흘러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났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물속에 잠긴 것 같아 괴로웠던 그때, 라디오에서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옛 가수들이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모든 감각을 최선을 다 해 유일하게 들리는 작은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현을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강약이 들렸다. 그 규칙에 맞춰서 천천히 숨을 얹었다. 이어서 아늑하고 따뜻한 여자분의 노랫소리, 마음을 안아주는 융단 같은 목소리가 시작되었다.


아. 그제야 귀가 트이고 두근대 터질 것 같던 내 가슴속 풍선이 잦아들었다.


축축하고 까만 밤에 달리던 택시 안에서 숨을 헐떡이던 나에게 그 따뜻한 노래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숨 쉬는 법을 영영 잊었을 것만 같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노래가 한 사람을 절망 속에서 꺼냈다는 것을 아마 모르시겠지만, 나는 이 지면을 빌어 덕분에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삶은 주어졌고 우리는 시작되었다. 원하진 않았지만 존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중하다. 주어졌다는 수동의 삶은 이내  주관대로 마음껏   있는 능동의 성질을 가진  같이 느껴진다.  살고 싶어서 우리는 성공을 좇는다.  과정에서 당연히 도태된다는 감정, 외로운 마음, 비교되고 움츠러든 마음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우리는 반짝거리고 당당하고 용기 있는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의 규격에 그럴싸하게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주어진 삶의 시간들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껏 내가 되기보다는 기대에 부응하고, 사회적 성취를 추구하면서 남들의 인정을 받는 편한 방법이 정답인 체 살아간다. 나는 불행하지만 행복이라니까. 계속 무언가를 이겨내며 살아간다.


그러나 숨이 차올랐던 그날의 내가 나에게 묻는다. 이게 진짜일까? 숨을  쉬게 하는 기대가, 성취가, 인정이, 행복이 과연 내게 맞을까? 나는 아니었다. 내가 진짜 원한다고 생각했던 예술의 을 느낄 수 있었던 타투이스트, '~처럼 보이고 싶다, ~ 되고 싶다'라는 외부로부터 정의되는 욕심이었다. 그래서 몸이 거부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잠시 숨이 멎었다.  이미 나였지만, 그걸 무시하고 살다가 탈이 났다. 그날  모든 겉치레들 이전에, 나에게 주어진  , , 생명을 지키는 일이 먼저라는   몸이 말해줬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인이 되어  숨과 삶을 지키는 선택을 하는 방향을 살아야 한다는 삶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답은  안에 있다는 것을 숨이 막히고 나서야 알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규격은, 언어는, 관계는, 감투는 내가 제일  안다. 자신의 선택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묵직하다면, 사실 그건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과제가 된다. 덮고 가도 소용없다. 계속  뻑적한 느낌이 남아 있을 테니까.


우리는  안을 계속해서 되돌아보고 질문하고 그렇게 계속 이미 존재하는 나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게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주어진  삶을 나답게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하고 재미없고 머리 아픈 과정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가장 마음이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냐고 묻고 싶다. 아무도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수많은 건조한 얼굴들에게 살면서  번씩은 숨이 가쁘게 차오를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마음이 무겁고, 몸은 떨리고, 도망가고 싶고, 어두운 곳을 찾던 그때. 일상과 이상의 박자가 맞지 않아서 들리는 엇박의 공명이 커졌을 , 마치 물속에 오래 있었던  같이 숨이  막히게 된다. 우린  마음을 들여다보며 결국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답에 가까워진 채로 삶을 종결할  있을 것이다. 요즘도 휘청일 때면 그때의 내가 말을 건다.

 ‘가진 숨이 부족해지면 잡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숨부터 쉬자. 일단 살자.’


생존, 그것만이 우리의 과업이다.




"우리는 정말 바보들이다. '그는 게으름 속에서 인생을 보냈다.' 우리는 말한다. '오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슨 ᅡᆯ인가, ᅡᆼ신은 살지 않았는가? 그것은 당신이 하는 일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빛나는 것이다." - 미셸 몽테뉴 / 책방 풀무질의 인스타 포스팅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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