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 남자가 집을 나선다

그 남자가 집을 나선다.

이유인즉슨 '아들이 기말고사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니 본가에라도 가서 보이지 말라' 아내의 말인데 그 남자는 이참에 자유를 누려보려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

아싸!

손에는 우유 하나, 초코파이 하나, 고구마 말랭이가 전부다.

참으로 소박하다.(고구마 말랭이는 다 먹어서 못 찍음)

오늘은 그 남자를 따라나서야겠다.

사실 그 남자는  년 전자동차로 무악재 고개를 넘어가다 넋을 놓고 바라본 언덕 위의 동내(재개발로 철거되는 중인데 무너진 건물더미 사이에 우뚝 솟은 교회 십자가와 마침 떠오르던 달이 너무 인상 깊게 남아 있어서)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이곳으로 목적지를 잡고  나선 것이.

내비게이션에 무작정 독립문을 찍고 독립문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오른쪽 첫 번째 골목으로 올라갔다.

 전에 먼발치에서 보았던 기억을 더듬어 한 골목씩 올라가 보려는 계산인 것이다.

골목길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위로 조금씩 올라가는데  남자 상상한 것과는 다르게 아파트들이 들어서서 그때의 감정을 느낄만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의 기대는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결국은 언덕을 오르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인왕산 등산로 입구 근처에까지 다다랐다.

갑자기 찾는다는 보장도 없는 기억을 더듬는 일은 그만두고 산을 오르고 싶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그토록 잘 다니던 산을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직장 다니느라 더군다나 코로나로 산을 잊은 지 오래이다.

 남자 옛날의 펄펄 날던 기운으로 산을 훨훨 날아다니다 어느덧 인왕산 정상까지 오르게 된.(사실 0.45킬로 조금 더 가야 정상이다)

여기저기 다들 보기 좋다.

부부 둘이서 산책하는 사람,

친구들과 모임, 회사 등 단체로 와서 냠냠하는 사람들,

'아빠 리 여기서 사진 찍고 가'하면서 포즈를 취하는 한 무리(5명)의 가족이 부러워 죽는 줄 알았다.

부럽다 우리 가족도 저렇게 할 수 있을 텐데,,,

다른 이들의 삶만 부러워하고 있다.

아내와 아들은 여유가 없다.

그 남자만 여유롭.

이런 상황은 그 남자의 문제이기보다는 아들에게 올인하는 아내의 이 크다.

대학을 갔으면 이제는 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자기의 시간을 가져도 될 텐데,,,

대체 언제까지 뒷바라지만 할 것인지,

내가 불쌍하다,,,

이유야 어쨌든 이 남자 집 나온 김에 오늘 뽕을 뽑는다.

올라갔다 동내로  내려오니 시골 마을 마냥 해방촌 거리 버스정류장이 정겹게 보인다^^

인터넷에 해방촌의 유래도 검색해 보고,,,

나름대로 동내 곳곳을 유심히 살펴본다.

역시 유서 깊은 곳이다.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멀리 태양 아래 해방교회가 보인다(참고로 굳이 따진다면  남자의 종교는 불교이다)

이 남자 이번엔 다시 남산 둘레길을 걷기 시작한다.

오줌이 마려워 둘레길 조금 올라가서 사람이 드문 곳에서 대충 싸고 내려가려던 인데,

인적이 끊이지 않아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한다.

힘들지만 소변을 보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으로 계속 올라간다.

결국은 시간만 더 허비하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때론 멋진 가을의 모습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운 자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걷다 보니 어느덧 남산 전망대 밑의 버스정류장 광장에 도착한.

생각했던 것보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사진도 찍는다.

휴~~~

화장실이다.

그러나 이번엔 핸드폰 배터리가 수명을 다했다.

나의 분신을 잃은 것처럼 기억을 담아낼 문명의 기기가 없기에 한눈팔지 않고 정신없이 무조건 내려간다.

골목길에 세워 둔 나의 전기차(쏘울) 무탈하게 잘 있었구나!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름답고 평화롭.

그때 무악재 고개를 넘으며 바라보았던 철거 중인 건물더미 사이의 교회십자와 달의 모습도 아름다웠(미안하게도 누군가는 삶의 터전에서 떠나야 했었겠지만)

집에 오니 이 남자의 예상대로 집안 청소는 아내가 했는지 옥상 빨랫줄에 젖은 걸레가 널어져 있다.

아싸^^

문 열고 들어서자 아내 왈 '나가라 청소 다해 놓으니 밥 먹으러 이제 들어왔냐'(ㅋㅋ 방해하지 말고 나가랄 땐 언제고)

그 남자 피식 웃어넘기며 씻으러 들어간다.

 남자 오늘은 대성공이다^^

어서 씻고, 밥 먹고, 사진 정리하고, 글 쓰고,,,

이렇게  남자의 하루가 또 다른 기억 속으로 지나간다.

참~~~

것은 비밀인데,

아내는 그 남자가 본가에 갔다 온 줄 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