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그 남자
01화
그 남자의 도시락
by
일상이 글이 되는 순간
Nov 3. 2024
그 남자가
요즘 또다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
코로나가 심할 때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여름에 날씨가 더워지면서 음식이 쉴지 모르니 그만 싸가지고 다니라는 아내의
논리
에 못 이겨 다시
구내식당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같은 건물의 다른 회사 직원 여러 명이 코로나에 걸려서 찜찜하니 다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겠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9월부터 또다시 구내식당에
그
남자가 보이질 않는다
.
그래서 그 남자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찾아 나서기로 했다
.
그 남자 삼교대로 운영되는 마지막 식사시간인 오후 1시 30분만 되면
혼자
어디론가 사라진다
.
조심히 미행해 보니 그 남자가 가는 곳은 지하 주차장이다
.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나 이리저리 살펴본 후 비밀스럽게 자동차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
맨 처음 하는 일은 물티슈로 손을 닦고 밖에서 누가 볼까 봐 미리 준비해 놓은 칸막이로 옆면 유리창을 가리고 운전석, 조수석 햇빛가리개를 모두 내려 정면을 가려 자기만의 아지트를 꾸민다
.
핸드폰
손전등을 켜 핸들에 걸쳐서 빛이 아래로 향하게
한
후
차량용 식탁도 없이 자동차 변속기 아래에 있는 컵홀더 뚜껑을 닫아 그 위에 반찬통을 올려놓고 밥통은 손에 들고 젓가락 하나로 우적우적 식사를 맛있게도 한다.
반찬통은 한 개이지만 랩으로 싸서 여러 개의 반찬으로 야무지게 채워져 있다.
반찬은 김치, 고추, 어쩌다 멸치, 소시지, 계란말이 등이다
.
그 남자의 먹성은 대한민국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것이다.
김치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는다
.
처음에는 코로나 핑계로 시작됐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 이 생활이 체질인 것 같다.
혼밥의 진수를 아는 그 남자
꼴에 커피도 준비해 와서 마신다
.
그 남자 아침에 일어나면 양심은 있는지 커피물도 끓이고 반찬, 밥도 직접 싼다
.
자 이제 밥도 먹었으니 SNS도 좀 보고, 눈 감고 음악 들으며 쉬기도 하고, 피곤하면 알람 맞추고 잠도 잔다.
사실 식당에 가서 줄을 서서 밥 먹는 것보다는 시간도 많이 남고 같이 가서 먹는 상대방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신경 쓸 일도 없어 너무 자유롭다
.
주어진 점심시간 1시간이 육박해 오면 준비해 온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
모든 직장인이 그 남자처럼 도시락도 싸 오고 커피도 자급자족 하면 아마 지역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주어진 점심시간 10분 전
이때부터 그 남자의 고민이 시작된다
.
더 쉬고 싶어,
마지막 교대자라 다음에 점심식사 갈 사람도 없잖아
,
10분만 더 쉬다가 갈까!
그렇지만 주어진 1시간이 되면 자유인에서 직장인으로
되돌아가
야 한다
.
사실 그 남자는 자동차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재미보다
이런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아마 코로나가 종식돼도 어떤 핑계를 대서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지도 모른다.
직장을 다니는 남자에게 하루 세끼를 다 챙겨줘야 하는 아내는 힘들어서 어떻게
하나
!
그러나 그 남자와
아내 우리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
그 남자 12월이면 정년퇴직이다
.
keyword
점심식사
남자
도시락
Brunch Book
그 남자
01
그 남자의 도시락
02
그 남자가 집을 나선다
03
그 남자가 출근한다
04
그 남자가 정장을 입습니다
05
그 남자는 오늘도 스무디를 마신다
그 남자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30화)
23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멤버쉽
일상이 글이 되는 순간
창비출판사의 '국어교과서작품읽기 중1시'를 읽고 운명인 듯 글을 씁니다. 삶이, 자연이, 사물이, 일상이 글이 됩니다. 우연히 내게 온 당신께 길을 내기 위해 노크하고 갑니다♡
구독자
371
구독
월간 멤버십 가입
월간 멤버십 가입
그 남자가 집을 나선다
다음 0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