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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그 남자 01화

그 남자의 도시락

그 남자가 요즘 또다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코로나가 심할 때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여름에 날씨가 더워지면서 음식이 쉴지 모르니 그만 싸가지고 다니라는 아내의 논리에 못 이겨 다시 구내식당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같은 건물의 다른 회사 직원 여러 명이 코로나에 걸려서 찜찜하니 다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겠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9월부터 또다시 구내식당에 남자가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그 남자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 남자 삼교대로 운영되는 마지막 식사시간인 오후 1시 30분만 되면 혼자 어디론가 사라진다.

조심히 미행해 보니 그 남자가 가는 곳은 지하 주차장이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나 이리저리 살펴본 후 비밀스럽게 자동차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맨 처음 하는 일은 물티슈로 손을 닦고 밖에서 누가 볼까 봐 미리 준비해 놓은 칸막이로 옆면 유리창을 가리고 운전석, 조수석 햇빛가리개를 모두 내려 정면을 가려 자기만의 아지트를 꾸민다.

핸드폰 손전등을 켜 핸들에 걸쳐서 빛이 아래로 향하게 차량용 식탁도 없이 자동차 변속기 아래에 있는 컵홀더 뚜껑을 닫아 그 위에 반찬통을 올려놓고 밥통은 손에 들고 젓가락 하나로 우적우적 식사를 맛있게도 한다.

반찬통은 한 개이지만 랩으로 싸서 여러 개의 반찬으로 야무지게 채워져 있다.

반찬은 김치, 고추, 어쩌다 멸치, 소시지, 계란말이 등이다.

그 남자의 먹성은 대한민국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것이다.

김치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는다.

처음에는 코로나 핑계로 시작됐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 이 생활이 체질인 것 같다.

혼밥의 진수를 아는 그 남자

꼴에 커피도 준비해 와서 마신다.

그 남자 아침에 일어나면 양심은 있는지 커피물도 끓이고 반찬, 밥도 직접 싼다.

자 이제 밥도 먹었으니 SNS도 좀 보고, 눈 감고 음악 들으며 쉬기도 하고, 피곤하면 알람 맞추고 잠도 잔다.

사실 식당에 가서 줄을 서서 밥 먹는 것보다는 시간도 많이 남고 같이 가서 먹는 상대방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신경 쓸 일도 없어 너무 자유롭다.

주어진 점심시간 1시간이 육박해 오면 준비해 온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모든 직장인이 그 남자처럼 도시락도 싸 오고 커피도 자급자족 하면 아마 지역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주어진 점심시간 10분 전

이때부터 그 남자의 고민이 시작된다.

더 쉬고 싶어,

마지막 교대자라 다음에 점심식사 갈 사람도 없잖아,

10분만 더 쉬다가 갈까!

그렇지만 주어진 1시간이 되면 자유인에서 직장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실 그 남자는 자동차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재미보다 이런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코로나가 종식돼도 어떤 핑계를 대서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지도 모른다.

직장을 다니는 남자에게 하루 세끼를 다 챙겨줘야 하는 아내는 힘들어서 어떻게 하나!

그러나 그 남자와 아내 우리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남자 12월이면 정년퇴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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