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타임(1)
구식 시계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이보나시티 4 구역, 오후 02:30, 생활용품, 잇고맨(IT GO MAN)님 기준 가장 가까운 물류소에서 15km, 수락하겠습니까?” 개인 A.I 비서인 아리가 말했다. 응. 지민은 대답하고 장비를 점검했다. 헬멧, 방충 옷, 전자 모기 채의 배터리 잔여량은 75%, 지금 오전 11시니까 1시간 정도는 충전을 더 할 수 있다. 지민은 물을 끓여 즉석 음식에 붓고 짧은 샤워를 마치고 왔다. 즉석밥은 상자째로 방 한구석에 한 달째 놓여있는데 이제 4개 정도 남았다. 언제 먹어도 지루하고 간편한 800kcal음식이다. 한 끼에 이 정도는 채워야 배달 다닐 때 견딜만하다. “아리, 피드 좀 켜봐.” 지민은 밥상에 투사되는 짧은 영상을 보면서 밥을 씹었다. ‘이번 주말에는 음식을 좀 해 먹어야겠어. 오랜만에 애들도 좀 불러서 먹여야지.’ 생각하며 요새 가장 인기가 많은 숏폼 플랫폼인 ‘블링크 피드’를 쓱쓱 넘겼다. 지민은 친구 중에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요리를 좋아하던 할머니에게 몇 가지 레시피를 배웠다.
“방충 옷 없이 모기 방어로 24시간 생존~도전!”,
“이보나시티에서 요새 유행하는 음식은?”
“18세에 월 오천 벌고 이보나시티에 입성-”
“라키 이번 신보 진짜 좋지 않아요? 눈을 감아, 혼돈은 없어, 끝없는 환상-”
블링크 피드에는 언제 봐도 고전적이고 쓰레기 같은 것만 올라온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피드를 안 보면 불안했다. 지민은 뒷정리를 하고 스테이션으로 갈 준비를 했다. 꼼꼼하게 방충 옷을 입고 방충 장갑을 꼈다. 마지막으로 방충망 처리가 된 헬멧과 고글을 착용하고 자전거를 들고 모기장과 덕 테이프로 덕지덕지한 코딱지만 한 원룸에서 나갔다. ‘아, 덕테이프 안 챙겼다.’ 지민은 자전거를 안고 계단을 도로 다섯 칸 올라 집에서 덕테이프를 가지고 나왔다. “싸구려 방충 옷 수리에는 덕 테이프만 한 게 없지.” 지민은 중얼거리며 할머니의 ‘유어 포드’를 재생했다. 이 구시대 음악 재생장치에는 할머니가 좋아하던 지미 헨드릭스의 노래로 꽉 차 있다. 할머니는 고수 담배를 피우며 눈을 가늘게 뜨고 “사랑과 평화, 그게 우리 시대정신이었는데, 그때는 지구와 인간이 이렇게 단절된 느낌이 아니었지.”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할머니는 8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히피문화 세대가 아닐 텐데 하고 지민은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늘 자기가 우드스톡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말했다.
자전거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간다. 거리에 사람은 거의 없다. 2040년, 지민이 3세가 되던 해에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모기가 급격히 번성했다. MXV라고 불리던 모기 매개 바이러스는 한번 물리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면역체계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발열과 발진으로 시작하여 12시간 안에 피부 출혈과 함께 사망에 이르렀다. 치사율도 33%로 높지만, 치료제도 없고 고통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사망자를 낳았고 높은 치사율로 사회의 근간이 무너졌다. 특히 공공서비스와 교육시스템의 붕괴는 세대 간 지식과 문화의 단절을 초래했다. 사회적 양극화가 더 극심해지던 중 한 대기업에서 거대한 방충 돔을 씌운 고급 공동주택 구역을 분양했다. 살아남은 부유층과 엘리트층은 안전하고 자원이 있는 이보나시티로 이사 갔다. 황폐한 여기 동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기업의 허드렛일을 해주고 푼돈을 벌며 살았다. 물론 이곳 동천에도 지자체에서 씌운 방충막은 있다. 전력 상태가 불안정해 거의 뚫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지만.
재생장치에서 ‘Hey Joe’가 나올 때쯤 지민은 스테이션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