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타임(4)
지민과 친구들은 만날 시간을 정하고 채팅을 종료했다. 지민은 잠자리에 들기 전 현이 세 개밖에 없는 바이올린을 가져와 소리를 내보았다. 지민의 엄마는 MXV로 지민이 세 살 때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지민을 키웠다. 길고 푸석푸석한 회색 머리에 고수 담배를 입에 물고 바이올린으로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연주하던 할머니. 지민은 유감스럽게도 바이올린은 켤 줄 모른다. 할머니가 현을 짚는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손만 아플 뿐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싫었다. 지민은 할머니에게 요리를 배우는 걸 더 좋아했다.
셋은 저녁 8시에 지민의 집 앞에서 만나서 같이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출발 전 도윤은 지민에게 자생식물 키트를 건네주었다. 지민이 지난번에 검은 물질을 발견한 장소에 갔더니 모두 감쪽같이 사라졌다. 30분 정도를 더 뒤지고 다녔지만, 별다를 게 없었다. 어느덧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모기떼들이 좀 더 출현했다. 스윙으로 단련된 손목으로 모기 채를 휘두르며 낡은 복도식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낡은 아파트는 사람이 살지 않고 거의 허물어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 이거 아니야?” 영채가 말했다. 영채가 가르치는 곳을 보니 벽에 검고 찐득찐득한 물체가 성인 손바닥 두 개 정도로 발라져 있었다. 조명을 비추고 확대 기능을 이용해서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검다고 생각한 물체는 검은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투명했다. 검은색처럼 보였던 것은 안에 수많은 검은 눈과 다리가 꾸물거리며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 다른 쪽을 조사하고 있던 도윤이 소리쳤다. “여기에도 있어, 그 검은 물체, 여기는 양이 꽤 많은데?”
“어? 저게 뭐지?” 영채가 소리쳤다. 지민이 빠르게 손전등 기능으로 영채가 보는 쪽을 비췄다. 얇고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스쳤다. 가까워질수록 그 소리는 점점 두꺼워졌다. 작은 음이 동시에 진동하며 수천 개의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소리 같았다. 듣기 싫은 소리가 점점 커지며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던 찰나 거대한 검은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근처로 다가왔다. 검은 구름은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며 날아왔다.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고막을 찌르는 듯하다. 이들은 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도 모르게 바닥으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세 개의 모기 채가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검은 구름은 존재감을 뽐내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민의 뒤통수 위로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도 온몸의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정체불명의 존재가 털끝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이때 일사불란하게 다가오던 커다란 구름은 높게 날아올라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이들 머리 위를 한 바퀴 돌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간 거야?” 잠시 후 지민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 같아” 영채가 대답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도윤도 떨리는 목소리로,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이들은 놀라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상하리만큼 모기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