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자니는 황구다. 아니 백구였던 것 같다. 린자니산에서 만났기 때문에 린자니라는 이름을 제멋대로 붙여주었다. 린자니는 인도네시아 롬복섬 북쪽에 있는 산이다. 롬복 어원이 산스크리트어로 끝이 없는 길이고 발리 힌두교인들이 숭배하는 산이다. 린자니산은 3726미터의 높이로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고 아직 활동 중인 활화산이라고 한다. 린자니는 칼데라호가 있는데 호수 이름은 세 가락 아낙이라고 한다. 그 뜻은 바다의 눈이라고 하는데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인다. 우리는 롬복으로 간 김에 충동적으로 아무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린자니 트레킹을 예약했다. 셈바룬-세나두 2박 3일 코스로 다녀왔다. 첫째 날은 셈바룬 캠핑사이트에서 1박 하고 2일째는 새벽 정상 등정 후 세나두 캠핑사이트에서 2박, 3일째 세나두 마을로 하산했다.
다시 간다면 충동적으로 트레킹을 하지는 않을 것 같고 만약 트레킹을 한다면 등산용 스틱을 반드시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운동화도 살짝 작은 것을 가져가서 시종일관 고통스러웠다. 어차피 거의 조리만 신고 바다에서 놀 것 같아서 그렇게 챙겼던 것 같다(그렇다면 트레킹을 가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정상으로 올라갈 적에 화산재는 콧구멍과 입구멍, 온 피부의 모공에 달라붙는다. 두발 앞으로 내딛으면 한 발은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래서 후회하느냐? 그건 아니다. 아니다 조금 후회한다. 우리가 예약한 에이전시에서는 가이드와 포터 몇 명을 붙여주었다. 우리 팀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직장인 4명과 서양에서 온 학생 3명, 한국인 2명(우리)이 있었는데 말레이시아 친구들이 꽤나 다정하고 야무졌던 걸로 기억한다.
호기롭게 등산을 시작하고 한참을 걸었다. 온통 푸른빛, 날씨는 덥다. 비는 조금씩 뿌리다 개었다를 반복했다. 점심시간 포터가 요리사이기도 했는지 인도네시아식 라면을 끓여다 주었다. 녹색 플라스틱그릇에 담긴 라면에 야채를 듬뿍 넣고 계란을 반쪽 올렸다. 먹을 때는 땀까지 흘리며 맛있게 먹었다. 포터가 있는 쪽으로 그릇을 갖다 주니 당근과 다른 채소를 다듬고 한 흔적과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 땅에 버려져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냐고 물어봤더니 야생 원숭이가 먹을 거라 괜찮단다, 그리고 분해되는 거라 괜찮단다. 나는 역시 산을 사랑하고 쓰레기를 덜 만들고 싶다면 산에 가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며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삼십 분 쯤지나자 엄청난 복통과 함께 음식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이틀정도는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고 물과 사탕만 먹었다. 같은 음식을 먹은 다른 사람들은 멀쩡했기에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하루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예 트레킹을 못했다. 나는 텐트에 아픈 배를 부여잡고 누워서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괴로워했다. 날씨도 개이고 조금씩 복통이 가라앉아 나는 새벽에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었다. 헤드랜턴을 장착하고 화산재가 날리는 껌껌한 산을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갔을 까 희멀건한 뭔가가 움직여 깜짝 놀랐다. 린자니였다. 여기서 린자니는 아까 말했던 백구다. 린자니는 엎드려서 희미하게 불빛이 반짝이는 마을 내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등산객들이 하나둘씩 도착하자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다. 마음에 드는 이와 조금씩 동행하며 걷기도 했다. 산 위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해가 뜨기 전 조금씩 변해가는 공기의 색이 해가 솟아오르는 순간 얼마나 극적으로 변하는 지를.
나는 린자니를 더 보고 싶었지만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몇 끼를 사탕만 먹어서 쪼그라든 위장과 뒤꿈치와 발가락을 파먹는 전족 같은 작은 운동화도, 운동화에 밑창으로 계속 흘러 들어오는 화산모래도, 힘들어서 헉헉대다 보니 혀에 자꾸만 내려앉는 화산재도 마침내 떠오른 붉고 커다란 해에 비추니 별게 아닌 것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머릿속으로 트레킹이 끝나고 마을로 내려간다면 어떤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커피도 마시고 갓 구운 빵이나 과일 같은 것도 먹어야겠다.
그러면서 내가 마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집 마당을 나가본 적 없는 황구라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우연하게 처음으로 집밖으로 나가 야산을 뛰어다니는 린자니(백구)를 만나친구가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상상해 보았다. 그런 심상이 떠올랐다 사라졌는데 마음 구석 어딘가에 남아있었는지 몇 년이 지난 후 아이패드로 음악을 만들다 보니 린자니의 백구가 튀어나왔다. <집 잘 지키는 개>라는 곡인데 기회가 되면 누폰음(누워서 폰으로 음악 하기)에서 소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트레킹을 할 때는 반드시 발에 잘 맞는 편한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그리고 현지 여행사들 산에 쓰레기 버리지 않고 지금은 쓰레기 잘 수거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