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직한 강아지 새로는 주인을 구하겠다고 따개비가 붙어있는 검은 시멘트 계단 위를 분주히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아주 용맹했다. 주인이 물에 빠져있으니 애타고 다급한 목소리가 판포포구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하지만 새로는 발만 동동 구를 뿐 물로 뛰어들지는 않았다. 역시 현명한 개로군. 5월 넷째 주, 반팔을 입어야 하는 봄날씨지만 천천히 데워지는 바닷물의 온도는 아직 굉장히 차갑다. 스노클장비와 슈트를 착용한 사람들, 또 수영을 하러 온 사람이 보라색 입술에 이를 딱딱 부딪히며 이 모습을 보며 웃었다.
5월의 기분 좋은 바람이 맨발과 머리카락을 살랑인다. 우리는 수영복을 입고 누가 먼저 들어갈 것인지 옥신각신했다. 나 들어간다? 어, 너부터 들어가. 아 엄청 차가우면 어쩌지. 포구에 모여있는 바닷물 색은 예쁜 에메랄드색, 멀리 풍력발전기가 천천히 돌아간다. 다섯 명 중 용감한 두 명이 먼저 들어갔다. 나는 따개비가 붙어있는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조금 망설이다가 물로 뛰어들었다. 물은 엄청 차가웠지만 팔다리를 휘저으면서 물에 떠 있으려니 몸에서 슬슬 열기가 올라왔다. 생각보다 조류가 있어서 앞으로 헤엄쳐 나가려고 해도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물론 내 수영실력이 별로인 것도 한 몫할 것이다. 친구 중 한 명은 급 몸이 안 좋아져서 옷을 꽁꽁 싸매고 물 밖에서 짐지킴이를 하기로 했고 문제의 새로 보호자가 마지막으로 뛰어들었다.
물 온도는 꽤 차가웠지만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상쾌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우리는 물 밖으로 기어 나왔다. 타월로 물기를 조금 닦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물에서 나오면 마시려고 사둔 따뜻한 커피 네 잔을 새로가 왔다 갔다 정신없이 뛰어다녀 모조리 쏟아놨다. 우리는 뭔가 아쉬워서 근처에 있는 협재해수욕장으로 갔다. 물이 깊게 고여있는 포구보다는 얕은 해수욕장물이 더 따듯하지 않을까라는 계산이었다.
도착한 해변, 태양도 뜨겁지 않고 모래도 차갑다. 심지어 바람도 차다. 일단 짐을 부려놓고 충직한 개 새로와 그 주인이 산책을 떠난 동안 수영에 진심인 둘은 재빠르게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차갑고 얕은 바닷물을 떠다녔다. 나는 차가운 시멘트에 앉아서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다를 보며 발로 모래에 그림을 그렸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새로 주인은 짐에서 먹을 것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올리브유를 넣어서 반죽해 구워낸 크래커와 서로 다른 맛의 치즈가 조금씩 트레이에 얹어져 있는 것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스테인리스 통을 여니 올리브유에 푹 절여진 채 썬 당근이 나타난다. 육지에서 손님이 온다며 전날 당근라페를 만들어뒀다고 했다. 머리를 뒤로 묶고 선글라스를 낀 채 쪼그리고 앉아서 크래커와 치즈와 당근라페를 조립하기 시작한다. 포크로 당근을 얹다가 시원치 않은지 본인에게 가장 익숙한 기구인 손가락을 사용한다. 이것이 요리사의 손맛인가! 이상하게 내가 조합해서 먹을 때보다 그 맛이 좋다. 역시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의 표정은 인자하고 자애롭다. 시원한 샴페인을 곁들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샴페인을 숙소에 두고 안 가지고 왔다. 2리터 삼다수를 손에 쥐고 한입씩 마시는 수밖에.
얕은 바닷물에 엎드리는 것은 추웠지만 커다란 미역이 떠다니는 곳에는 새우와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쳤다. 우리는 이른 물놀이를 마치고 편의점에서 산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