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이지만 역시 먹는 얘기가 훨씬 많은 글
우리는 터미널에 모였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무슨 강아지옷을 입고 왔냐며 놀렸다. 줄무늬가 있는 니트재질의 셔츠였는데 빨아서 건조기에 건조했더니 정말 강아지옷만큼 작아졌다. 한 번도 못 입었는데 너무 아까웠다. 놀러 가는 김에 한 번이라도 입자며 강아지옷에 몸을 겨우 구겨 넣고 왔다. 움직이기만 하면 셔츠가 위로 올라가서 불편했지만 뱃살을 잘 수비하며 제천터미널에 도착했다.
영화를 보는 것은 핑계이고 메인은 두부산초구이였다. 우리는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주린 배를 움켜쥐고 택시를 타고 순두부집으로 갔다. 옥수수밭이 드넓게 펼쳐져있는 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 한점 불지 않고 그늘도 없는 곳에서 이렇게 기다리다간 두부구이를 먹기도 전에 내가 구이가 될 것 같았다. 우리는 택시기사님의 연줄로 산초두부구이 맛집으로 프리패스 입성했다. 잠시 셀럽의 기분을 만끽하며 자리를 안내받았다. 좌식 식탁에 방석을 깔고 둘러앉았다. 노란장판이며 누런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기대에 차서 산초두부구이와 두부찌개를 3인분 시켰다. 옥수수주도 하나 시켰다. 산초두부구이가 어떻게 나오나 궁금했는데 프라이팬에 두부를 썰어 기름을 둘러 내왔다. 아, 스스로 구워 먹으라는 뜻이군. 돌아가며 패기 넘치게 뒤집개를 집었지만 다들 뜨겁다며 나가떨어지고 그나마 손이 야문 친구가 끝까지 두부를 구워서 배분했다. 산초기름에 구운 두부맛은 이런 것이 군. 음미하며 칼칼하니 시원한 두부찌개와 같이 밥을 한 그릇 뚝딱했다. 배를 두드리며 우리는 우리의 동아줄 택시기사님께 전화를 해 택시를 타고 옥수수밭에서 탈출했다.
상영시간까지는 꽤 시간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정자가 나타나면 잠시 쉬었다. 작년 여름은 이번 여름만큼 덥지는 않았나 보다. 이런 무모한 짓을 했던 것을 보면. 어디로 가면 재미있는 잔치가 있을까 하며 기웃대다 목이 말라 편의점에 들렀다. 여기로구나. 여기에 큰 잔치가 열렸구나. 고양이에 미쳐있기로 둘째 가면 서러운 자들만 모여있기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4개월 정도 되는 귀여운 새끼고양이들이 여러 마리 편의점 앞에서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양이 집도 있고 장난감과 물, 사료도 있는 것을 보니 편의점에서 각 잡고 돌봐주는 새끼냥들인 것 같았다. 어디서 찾았는지 친구 한 명은 버들강아지를 하나 따왔다. 이에 질세라 다른 친구 한 명은 기다랗고 낭창낭창란 나무줄기를 주워왔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아. 이들에 비하면 나는 한참 모자란 사람이구나. 나 따위는 고양이에게 미쳐있는 것도 아니로구나. 이들의 광기 어린 눈빛과 현란한 사냥놀이에 편의점 주인은 예의주시하면서 우리를 살폈다. 혹시라도 이 고양이 광인들이 아닌척하며 배낭에 고양이를 쑥 집어넣고 모른 척 걸어가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고양이들과의 즐거운 시간도 잠시 우리는 제천실내체육관 앞으로 갔다. 실내체육관 앞에서 마을의 자원봉사자분들이 제천 옥수수를 삶아서 나눠주셨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찰옥수수가 있다니. 아까 옥수수 밭에서 봤던 옥수수인가? 우리는 광장을 서성이며 옥수수를 뜯었다. 곧 입장하여 사카모토 류이치 트리뷰트 콘서트와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인후암으로 고인이 된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사카모토 류이치. 시대와 생존의 위기 속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찾고자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생의 끝부분에서 그는 인위적인 소리보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소리 자체가 최상의 음악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녹음장비를 들고 빗소리와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를 가만히 녹음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음악과 영화에 감동을 받은 채로 하지만 오래 앉아 있어 조금 뻐걱거리는 몸으로 바깥에 나왔다. 원래 계획은 체육관 근처에 세워진 야시장에서 간단하게 먹으면서 한잔할 예정이었으나 의외로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포기했다. 닭꼬치 굽는 연기와 함께 역사적 위인을 기리는 동상 한가운데 디제이세트가 조명을 밝히며 들어와 있었다. 노란 머리를 한 디제이는 갓을 쓴 근엄한 위인들 사이에 댄스 음악을 틀었고 나는 그 모습이 정말 흥미로웠다.
우리는 터미널쪽으로 이동해서 밥 먹을 곳을 찾았으나 저녁 여덟 시 반이 넘으니 먹을 곳이 전혀 없었다. 한참 걷다가 겨우 분식집하나가 마감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식사가 되는지 여쭤봤다. 사장님은 흔쾌히 우리에게 밥을 해주셨다. 넷다 다른 음식을 주문했는데 빠르고 맛있게 만들어주셔서 기뻤다. 다만 차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아서 밥을 늦게 먹는 나는 조금 곤란했지만 최선을 다해서 먹고 일어섰다. 집에 돌아오는 밤버스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하루를 돌아봤다. 만족스러운 제천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