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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Aug 20. 2024

백두대간협곡열차

  열차라는 단어가 주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열차여행을 하다 보면 밀실살인사건이 벌어지거나, 꼬리칸의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으며 옆자리 앉은 사람과의 예상치 못한 로맨스가 피어날지도 모른다. 열차에서 먹는 도시락은 '김밥지옥'에서 싸 온 김밥 한 줄 일지언정 실력 있는 주방장이 한 땀 한 땀 말아낸 롤 같은 맛이 난다.  


  오늘은 어느 가을에 떠난 백두대간협곡열차여행을 떠올려봤다. 코레일 v트레인을 예매를 하고 영주에서 철암까지는 약 2시간 35분 정도가 소요된다. 탁 트여있는 창문너머로 여름이 저물어가는 들판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봉화와 춘양을 거쳐 분천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일단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니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품들, 선글라스를 착용한 산타가 마중을 나온다. 푸르른 잔디와 산타의 빨간색 옷이 대조적이라 활기가 느껴졌다. 기차가 정차해 있는 동안 이리저리 걸으면서 몸을 좀 푼다. 기차에 다시 올라 이제 협곡을 지난다. 옆으로 흐르는 낙동강이 보인다.


  양원역이라는 작은 간이역에 잠시 정차했다가 출발한다. 소박한 나무 패널에 흰 칠을 하고 사람이 붓으로 쓴 것 같은 ‘양원’이라는  글자, 이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과 간이역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뭘까 잠시 상상해 본다.

곧 승부역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는 갖가지 간식거리를 알차게 팔아서 간식거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정차해 있는 짧은 시간에 장을 보는 개념 자체가 설렌다.


  이제 철암역이다. 역에서 내려서 100미터 정도 가면 철암탄광역사촌을 둘러볼 수 있다. 철암탄광역사촌은 옛 탄광촌 상가들을 그대로 보존해두었다고 한다. 철암천변을 따라 상가와 주택이 주욱 늘어서있는데 건물 안을 들여다보면 80년대 탄광촌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공간이 펼쳐진다. 고된 하루를 끝내고 식당에서 허기를 채우는 광부들과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시간을 생각해 본다. 주택에는 하천바닥에 지지대를 만들고 주거공간을 만든 까치발 건물이 특징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70년대에만 해도 철암이 황지와 함께 태백의 중심지였다고 하는데 그 시절 탄광촌은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라고 할 정도로 가게, 이발소, 술집등에 사람이 넘쳐났다고.


  나는 메밀을 좋아하는 데 마을에서 사 먹은 막국수와 도토리묵이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관광객과 마을 주민과 도토리묵에 비스듬하게 떨어지는 가을햇살, 가을 햇살은 따뜻한데 또 그 온도가 어느 정도 서늘하다. 반팔을 입고 얇은 후드티를 걸치고 낯선 곳을 탐방하는 맛이 일품이다. 이번 여름더위가 한풀 꺾이면 열차여행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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