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뮤하뮤 Aug 13. 2024

시간과 의지와 노동의 값

xyz의 값을 구하시오(정답! 두루치기?)

  파란 수면 위로 윤슬이 반짝인다. 우리는 땀을 엄청나게 흘려가며 계단을 올라왔다. 아침부터 세 시간 정도를 걸었는데 몸 안에 수분이 거의 빠져나간 것 같다. 배낭에 물 2리터 정도를 챙긴 것 같은데 어느덧 1리터도 안 남았다. 더위가 시작되는 6월, 나와 친구 두 명은 바다가 보이는 전망대로 트레킹을 갔다. 서해 쪽 어디였던 것 같은데 지명이 가물가물하다. 트레킹을 누가 가자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는 서로를 가볍게 탓하며 걸었다. 그저 전망대에 도착해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는 순간만 기다렸다.


  눈과 입 주변을 귀찮게 맴도는 날벌레를 손으로 쳐내며 점심메뉴에 대해 말한다. 물론 엄청나게 헉헉거리며.

“다들 뭐 싸왔어?”친구 A가 묻는다.

“나는 미숫가루에 단백질 파우더.” 내가 대답한다.

잠시 다들 할 말을 잃었다.

“그게 점심이라고? 실망이다. 진짜. “

“레알 라이트 백패커의 점심이네. 내 거 안 준다.”

“아니, 내려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면 되지. 음식 무겁게 싸들고 올라가면 무겁고 내려올 때 쓰레기 가져오는 거나 귀찮지.” 나는 변명한다.

“응, 그래.”

“너는 뭐 싸왔는데?”

“나는 즉석비빔밥, 찬물만 부어도 자체 발열로 비빔밥이 된대.” 친구 A가 말했다.

오 편하겠다. 근데 무슨 맛인지 너무 잘 알겠다.

“나는 냉면을 싸왔어.”친구 B가 말한다.

“와, 무슨 수로 냉면을 싸왔어? “

“아침에 냉면을 삶고 어젯밤에 육수를 지퍼백에 얼려놨지.”

대박, 얘 엄청 똑똑한 것 같은데? 우리는 감탄했다.


  끈적끈적한 피부에 날벌레가 붙어버린다. 애초에 누가 오자 그랬지? 이제 가벼운 원망이 아니라 조금 화가 나기 시작하지만 누가 먼저 가자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을 마시면서 걷다 보니 배낭이 가벼워지는 것은 좋았다. 그래도 점심으로 미숫가루를 타먹고, 하산하면서 마실물은 남겨둬야 한다. 해발 400-500m 정도 야트막한 산에, 주로 계단으로 되어있는 등산로지만 어찌나 힘들던지.

산을 탈 때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동네 뒷산이든 히말라야 베이스캠프던 모든 산은 올라갈 때 힘들다. 뒤돌아보면 힘든 기억은 휘발되고 좋았던 기억으로 보정돼서 또 다음산을 오르게 되는 것뿐.

(내 마지막 등산은 올해 관악산이었는데 무릎과 종아리가 붓는 후유증이 너무 오래가서 앞으로 어떤 산이든 오를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중간에 다시 내려오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목표한 곳에 도착하게 된다. 시간과 인간의 의지 그리고 기계적인 육체의 노동이 합쳐지면 원하던 지점에 도달하는 것은 그냥 시간의 문제가 된다. 늦게 도착하거나 빨리 도착하는 것의 차이일 뿐.(그리고 산에서는 중도이탈도 시간과 노력이 꽤 많이 드니 긴급 상환이 아니고서는 그냥 목표지점까지 가는 게 낫다.)


  우리는 백패킹 장비나 음악 취향에 대해 옥신각신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기계다리를 움직였다. 마침내, 도착했다. 이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일단 신발을 벗고 방석을 깔고 앉았다. 나는 지퍼백에 담아 온 미숫가루에 설탕과 단백질파우더를 섞은 물질을 컵에 붓고 물을 부었다.

각자의 점심을 준비하고 음미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니 이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귀를 활짝 열고 자연의 소리와 친구들이 말없이 점심을 먹는 소리를 듣는다. 더운 땅과 풀에서

올라오는 흙과 나무냄새를 실컷 맡으며 텁텁한 미숫가루를 들이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려가서 비냉을 먹을까 두부두루치기를 먹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