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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Aug 06. 2024

야외 수영장의 구름관찰자들

  며칠을 한강에 나가 앉아있었더니 얼굴이 울긋불긋하고 등이 따갑다. 그렇지만 오늘도 비치타월, 선크림과 책 한 권을 방수백에 챙긴다. 수영복을 속에 입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 처리할 일 몇 가지를 하고 나면 땀이 아주 뻘뻘 난다.

11시, 폭염으로 벌써 아스팔트가 일렁 일렁하게 올라오는 것 같다. 페달을 밟아 한강으로 나간다. 땀과 습기로 현재 지표면은 물속에 잠겨있는 게 맞다는 확신을 하며 달린다. 더울 때는 더움을 최대한 무시해야 한다. ‘덥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덥다는 인식은 체온을 더 올릴 뿐이다(과학적 근거는 없다).  


  눈이 흐릿해지고 뇌가 멍해지며, 사방에서 스테레오(아니 돌비사운드)로 들려오는 매미소리에 귀도 멍해진다. 매미가 나였나 헷갈리기 시작할 때쯤 야외수영장에 도착했다. 나는 최대한 입구에서 가까운 지점에 따릉이를 세워둔다. 5000원짜리 표를 끊고 들어가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평일 정오의 한강 야외 수영장은 의외로 힙하다. 인공적인 파란색으로 빛나는 수영장과 가지런히 야외에 세워져 있는 샤워기들, 천막이지만 제법 넓은 탈의실, 거대한 뭉게구름을 배경으로 서있는 고층 아파트들이 어우러진 모습에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코코넛 향이 나는 오일을 발라가며 이리저리 몸을 굽고 있다.


  나는 일단 땀을 많이 흘렸으므로 수영복만 입고 샤워기의 물을 틀고 땀을 씻어낸다. 차가운 물이 샤워기에서 쏴아아 하고 쏟아진다. 하늘을 보며 머리와 얼굴을 적시고 몸에 물을 끼얹는다. 짐을 들고 어느 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을지 둘러본 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한숨 돌리고 나니 출출해졌기에 간단한 식음료를 파는 매점에 가서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잔과 회오리 감자를 샀다. 친구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친구를 위해 핫도그와 아이스커피도 샀다.


  우리는 타월 위에 앉아서 가벼운 근황토크를 하며 간식을 먹는다. 물에 가루를 타서 만든 레모네이드지만 달고 시원하다. 지금부터 안전을 위해 1시까지 입수가 안된다는 방송이 나온다. 폰과 책을 손에 쥐고 우리는 각자의 세계로 빠져든다. 나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악몽>과 각종 SNS를 번갈아가며 읽었다. 눈이 아파오면 머리에는 캡 모자를 얹고 하품을 하면서 주변을 관찰한다. 노릇노릇 태닝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어느덧 입수해도 좋다는 방송이 나온다. 수모와 물안경을 쓰고  물속으로 풍덩 들어간다. 얼마 전 왔을 때보다 수질이 안 좋아졌는지 염소냄새와 얄딱구리한 냄새가 섞여있었지만 물에서 노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개헤엄과 헤드업 평영을 섞어가며 헤엄을 얼마간 치다 뭍으로 걸어 나왔다. 샤워기의 물을 틀어 염소냄새를 씻어내고 젖은 채로 앉아서 남은 레모네이드를 쪼옥 마신다. 옆자리에는 갈색으로 알맞게 구워진 사람이 봉지과자를 뜯더니 와그작거리며 먹기 시작한다. 갑자기 회색구름이 몰려와 물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데 이미 젖어있는 사람들은 두려울 게 없다. 그저 느긋하게 누워서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을 관찰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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