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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묭 Jun 26. 2023

밀가루 없는 월요일 같이 하실래요?

실패가 환영받는 월요일 루틴

어느 날 내 안의 루틴세포가 드릉드릉 시동을 걸었다. 루틴세포는 건강한 식습관을 위한 루틴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는 욕구를 슬그머니 털어놓았다. 루틴세포는 열정이 넘치고 이성적이기 때문에 이 신호는 놓치지 않고 꼭 들어준다. 문득 ‘고기 없는 월요일’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한 고기 없는 월요일은 일주일 중 하루는 채식을 하며 사람과 지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캠페인으로, ‘Meat free monday’라고 부른다. 식습관 전체를 한 번에 바꾸는 건 어렵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약 5년 간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지향하고 있었다. 건강을 위해 고기 대신 줄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밀가루 없는 월요일(밀없월)’을 하기로 했다. 월요일 하루만 밀가루를 멀리하는 것이다.



이런 결심은 혼자 보다 소수의 인원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게 지속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 즉시 친구들 단톡방에 들어가 함께할 동료를 모았다. 밀가루를 안 먹고 어떻게 사냐며 거부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무려 3명의 친구가 발을 담가 주었다. 그렇게 4명의 위대한 밀없월 여정이 시작되었다.



월요일이 되면 먼저 끼니를 챙긴 사람이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리면서 오늘이 밀없월임을 일깨워준다. 직장인 친구들은 회사에서 먹는 점심을 고를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있기 때문에 이를 두고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한 직장인 친구의 점심 메뉴가 햄버거로 정해졌을 때도 ‘빵을 빼고 먹어라, 빵 대신 야채로 감싸주는 프로틴버거를 먹어라, 타협해서 빵은 한쪽만 먹겠다’ 등등 여러 조언들이 오갔다. 글루텐프리 파스타면, 밀가루 없는 편의점 과자 등 밀가루 없는 음식이나 간식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런 조언이나 유용한 정보 공유는 밀없월을 포기할 뻔한 순간들을 잡아주기도 한다. 물론 월요일에 밀가루를 먹을 수밖에 없는 식사 약속이 있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밀없월을 시도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럴 땐 자발적으로 화요일이나 수요일에 도전하겠다며 밀없화, 밀없수를 인증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밀없월을 실패하는 이유도 다양한데, 그중 가장 흔한 실패 요인은 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잘 참고 넘겼다며 뿌듯한 마음으로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참으려고 했는데’, ‘점심까진 버텼는데 저녁은..’ 등등 실패를 자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실패를 숨기는 법은 없다. 실패한 순간에도 ‘나 실패했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아무도 그 실패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서로의 실패에 공감하며 웃거나 다음 끼니라도 잘 챙기자며 응원한다.




밀없월 여정은 오늘로 78일째 순항 중이다. 4명 모두의 성공률이 높지는 않지만, 12번의 월요일을 맞으며 밀가루 없는 하루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노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순항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11번의 실패 속에서도 하루 정도는 성공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서로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고 멋지다며 응원하고 격려해 준다. 밀가루가 없어진 자리에 시도와 실패가 가득한 매주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밀없월 실패 모음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밀없월 카톡방에는 수많은 실패의 흔적들이 올라온다. 그래서인지 실패라는 단어가 민망하지도, 절망적이지도 않다. 점심에 실패했으면 저녁에 하면 되지. 오늘 실패했으면 다음 주에 다시 시도하면 되지. 월요일은 계속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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